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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까 말까 와 잘까 말까 사이

응원해 줄 수 없을까?

by 기나

살은 언제 빠지는 걸까. 아파트 헬스장 휴관일인 매주 화요일과 명절 연휴를 제외하고 매일 달려서 오늘까지 26일 달렸다. 달리고, 기구 사용할 줄 아는 것 위주로 근력운동도 하면서 부지런히 다녔다. 안 가고 싶은 마음이 왜 없으랴만, 그 마음 극복하고 가면 그다음 날은 조금 더 쉬워지고, 행여나 유혹에 넘어가면 그다음 날이 오늘보다 더 힘들게 상상이 되니 움직이게 되더라. 운동은 남편의 제안, 어쩌면 지시, 어쩌면 권유, 어쩌면 휴직 조건 같은 것이었는데 그렇게 해서 얻는 게 뭐냐고 물어더니 '해보면 알겠지'라더라. 어쨌든 시작은 그랬을지언정 나를 그리로 데리고 가는 건 나다. 이 미션이 만족스럽게 마무리되면 나는 애초 나를 움직이게 한 남편의 제안, 어쩌면 지시, 어쩌면 권유, 어쩌면 휴직조건 '덕분'이라고 말할 거고, 남편은 본인이 뭐라고 했거나 간에 계속 해낸 '당사자의 노력'이라고 칭찬해 주는 아름다운 장면을 기대하고 있다.


현실은 그 반대일 가능성이 크고.


오늘 잠자기 전에 아이들과 뒹굴거리다가 '살은 언제 빠지는 걸까' 했더니 남편이 뭔가 말을 하려고 하는데 딱 떨어지는 표현을 찾지 못하다가 하는 말이, 내가 조금 더 진심으로 하면 빠질 것이라고 했다. 진심으로 보이지 않는 거야? 정말 탁월한 재주다. 사람 맥 빠지게 하는.


운동과 함께 매일 하려고 하는 일, 그러니까 내가 나에게 주는 숙제 같은 것. 매일 글쓰기다. 정말 무슨 말을 써야 하나, 이게 말이 되는 말인가,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 많은 자문을 남기면서도 그냥 썼다. 어쩌다 하루 빠지면서도 이틀 이상 연달아 빠뜨리지 않으려고 했다. 언제나, 뭐든 그렇듯 그만두기는 너무 쉬우므로, 잦은 빠뜨림이 계속 빠뜨림을 유도하게 될 것이 걱정됐다. 써버릇하면 내일은 오늘보다 더 편안하게 쓸 수 있될지도 모르는데 하루 빠지면 하루치의 전진을 까먹으면서 동시에 후퇴하는 느낌적인 느낌도 무시할 수 없다. 운동과 비슷하다.


오늘은 자유주제를 쓰는 날이라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을 덜어내기 위해 그날그날의 대주제를 정해두었다. 일, 월요일은 자유주제다. 화요일은 먹는 것에 대하여, 수요일은 신앙생활에 관하여, 목요일은 남편에 관하여, 금요일은 아이들에 관하여, 토요일은 직업/업무에 관하여다.) 뭐든 쓰면 되는 날인데, 숨통 좀 터놓으려고 만들어 놓은 자유주제의 날이 오히려 '쓸 말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리기 무척 쉽다. 쓸까 말까 하다가 그러저러하여, 조금 전에 나더러 운동에 진심을 더하라는 남편의 싫은 소리에 악이 바쳐 침대로 그냥 들어가 버렸다. 그런 식의 자극은 주는 사람한테는 짜릿할지 모르겠는데 받는 입장에서는 기분이 똥 같다. 칭찬으로 일으키는 게 아니라 채찍으로 일으키는 것 같은데 나는 당신 방법이 정답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움직일 거다. 글쓰기는 당신 관심 밖의 일이지만 내 방식대로, 그러나 계속해서 하는 일을 응원받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 일이 나를 어딘가로 데려가듯, 매일 달리기도 당신이 바라는 정도의 진심을 더하지 않아도 나를 어딘가에 데려가 놓으면 그때 응원해 주려나.


그땐 노땡큐.

잘까 말까 하다가 나와서 오늘도 숙제 클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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