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되면 만날 것
"똬나, 나중에 이 책 꼭 읽어봐"
에미가 읽는 책이라면 일단 관심 가져보는 수형이와 지동이에게 고맙다. 독서모임 책은 내 책으로 읽는 게 무조건 좋으니까 사두는 것도 있지만 결국 한 번씩 걸러져, 우리 집에 있는 책들은 크게 에미가 아직 읽지 않은 책과 훗날 우리 아이들이 읽기 위해 남겨진 책으로 나눠진다. 오랜만에 다시 시도해볼까 싶어 빌려온 <소년이 온다>가 이제야 읽혀, 오늘 심심해서 에미 곁을 맴도는 지동이에게 나중에 꼭 읽으라고 한마디 건넸다. 아이는 '1학년때 선생님이 읽던 책'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다음에 어디서 또 이 책의 제목, 표지를 알아보면 '우리 엄마가 나중에 읽어보라고 했던 책'으로 기억하려나.
그렇게 저렇게 읽은 책들과 방관자적이었던 부모와 나를 가엾게 여겼던 것 같은 언니들과 정직하고 따뜻한 신념들을 삶에서 나에게 물들여놓은 할머니를 생각한다. 가운데 두 가지는 요 근래 그것마저 나를 이렇게 키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추가한 것인데, 늘 나는 할머니의 존재가 결정적이었다고 말해왔다. 책은 말할 것도 없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추억들이 아무 데나 뒹구는 책을 아무 데서나 뒹굴며 읽었던 장면들인걸 보면. 그리고 책만큼 눈에 띄게 나를 변화시키는 것도 없었다.
오늘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느낀 괴로움과 뜨거움이 나에게 섞였다. 나는 어떤 부분에 눈이 조금 뜨였고, 궁금해졌다. 단편적인 역사적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 맥락에 대해서는 완전하게 인지하고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부끄러움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달리 노력하지 않았다. 그게 아니어도 할 일이 많았고, 관련 책을 읽는 것마저도 쫓겼다. 그래서 안 읽혔을까. 내용은 무겁지만 가독성은 좋은 소설인데 안 읽힐게 뭐람. 나는 이 책을 서너 번 펼쳤다 덮기를 반복했다. 덮을 때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빚을 갚지 못한 기분이었다.
소설이 다루고 있는 사실에 대한 맥락을 묘사하지 않으므로 나 또한 거기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다 읽고 나는 당장 <이것이 인간인가>하는 질문을 떠올렸다. 양심의 아름다움, 강력함을 느낀 사람이 저쪽에도 있을까. 있어야 하지 않을까. '죽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살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겠지만, 어쩌면 버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113p.)고 희망하던 자가 결국에는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135p.)고 고백하게 만든 인간들 중에도 똑같이 고백하는 자가 나와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러나 나는 아직 그런 고백은 들어보지 못해서 심사가 뒤틀린다.
어떤 책들은 그냥 내 몸을 깨끗하게 뚫고 가고, 어떤 책들은 내 몸과 섞여 버린다. 전자의 경우 나는 그냥 나지만, 후자를 느낄 때 나는 내가 어딘가로 가고 있다고 감각하게 된다. 화학작용씩이 나는 아니지만 오늘 읽은 책들이 부지런히 나와 화합(?)하고 있다. 그런 책들과 시의적절하게 만날 수 있으면 읽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하여 우리 아이들이 지금 원작이 따로 있는 어린이판, 청소년판들을 읽어서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원작을 때에 맞게 만나 '이것이다'라고 감각하는 순간이 기다리고 있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