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감시 갖추고 사전교육·사후관리 해야 면책…‘란파라치’ 주의보
김영란법, 오늘부터다. 지금의 혼란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비용이겠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청탁금지법이 28일부터 시행됐다. 정식 명칭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지만 ‘김영란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적극적으로 추진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법의 모태인 공직자 행동강령이 공직자만을 대상으로 했다면 청탁금지법에는 각급학교의 장과 교직원, 사립학교 임직원, 언론사 임직원도 포함돼 있다.
비정상의 정상화…김영란법으로 부패 뿌리 뽑는다
청탁금지법이 만들어진 건 공직사회에 대한 우리사회의 불신이 뿌리깊다는 인식에서다. 지난해 권익위 조사에 따르면, 공직사회는 부패하다는 명제에 일반국민들은 57.8%가 동의한 반면 공무원들은 3.4%만이 그렇다고 답했다.해당 조사와 관련, 권익위 조두현 보좌관은 “이같은 차이는 국민들이 기대하는 공직사회의 청렴수준이 공직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임을 의미한다”며 “국민들이 보기에는 부패인 것이 공직자들은 관행으로 여겨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고 꼬집었다.
한국의 국가경쟁력 수준에 비하면 공공부문 청렴도는 낮은 수준이다. 세계경제포럼의 2015 국가 경쟁력 지수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경쟁력 순위는 26위였다. 하지만 비정상적인 지급 및 뇌물 부문은 46위, 공공자금의 전용(轉用)은 66위로 국가 경쟁력 수준에 크게 못 미친다. 정책결정의 투명성은 123위에 그쳐 하위권이다.
서울시는 공직사회혁신대책을 통해 2014년 8월부터 이미 자정 노력을 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추진해 일명‘박원순법’이라 불린다. 서울시는 직무관련이나 대가 여부를 불문하고 금품을 받았을 경우 감봉 이상의 처벌을 하고, 100만원 이상 받거나 100만원이 안 돼도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요구한 경우에는 해임 이상의 중징계 처벌을 내린다.
김영란법 대상자에 금품 건네면 최고 징역 3년
청탁금지법에서 금지하는 첫 번째는 부정청탁이다. 이 법에서 정의하는 부정청탁이란 법령을 위반하거나, 법령에 따라 부여받은 지위나 권한을 벗어나서 처리하도록 하는 ‘부탁’ 행위다. 그러나 이해당사자가 자신의 일을 직접 공직자에게 요구하는 행위는 제재 대상이 아니다. 공공기관과 국민 사이에 활발하게 의사소통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경우는 처분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것이 권익위의 설명이다.
제3자를 통해 청탁하면 문제가 된다. 제3자를 통해 부정청탁을 한 경우 청탁한 사람은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가령 개인사업자 A씨가 사업장 감독자인 지자체 공무원 C와 친분이 있는 지인 B에게 “감독을 느슨하게 진행할 수 있게 말 좀 잘 해달라”고 요청하면 위법이다. 지인 B씨가 A씨의 부탁을 듣고 공무원 C에게 부정청탁을 한 경우,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청탁을 받은 사람이 해당 내용을 다시 청탁을 하는 경우 제재 수준이 무거워진다는 의미다. 청탁 내용의 실현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이 법에서는 부정청탁 자체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청탁 내용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더라도 법적인 제재를 받는다.
법인 소속 임직원이 업무와 관련된 부정청탁을 하면 임직원과 회사 모두 제재 대상이다. 직원이 회사 일로 공직자에게 부정청탁을 한 경우, 임직원은 제3자인 법인을 위해 부정청탁을 한 것이므로 2000만원 이하 과태료 대상이다. 이때 법인도 위반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상당한 주의·감독을 다하지 않았다면 양벌규정에 따라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일단 기업이 살펴야 할 것은 거래처에 청탁금지법 적용대상이 있는지다. 사업모델에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이 있는 경우엔 그 자체로 위험이 있으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부서별로 보면 언론사를 상대하는 홍보 분야도 주의 대상이다. 청탁금지법에 따르면 방송사, 신문사, 잡지사, 뉴스통신사, 인터넷신문사 임직원 전체가 청탁금지법 대상이다. 보도 인력이 아닌 행정, 단순 노무 직원도 적용된다.
임직원이 업무와 관련된 청탁만 한 것이 아니라 금품까지 건넸을 경우엔 형사처벌도 받을 수 있다. 이 법에 따르면 누구라도 공직자나 언론인 등에게 수수금지 금품을 주거나 주겠다고 약속해선 안 된다. 이를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금품의 기준은 폭넓다. 금전, 유가증권, 부동산, 숙박권, 입장권, 초대권,관람권 등 재산상 이익부터 음식물, 주류, 골프 등의 접대, 교통, 숙박 등 편의제공도 포함된다.
단, 원활한 직무수행과 사교를 위해 식사나 경조사비는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기준액은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경조사비 10만원이다. 일부 업계에서는 산업이 위축될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권익위는 “청탁금지법의 입법 목적과 취지, 일반국민의 인식, 공정하고 청렴한 사회를 위한 범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입법예고안의 가액범위를 그대로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누구나 신고가능…란파라치·내부자 주의보 발령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청탁금지법에 저촉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해온 모든 관행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관습처럼 이어져온 공무원, 언론인과의 관계를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끼리 입단속하면 되겠지’란 생각은 금물이다. 내부 자료로 관리해도 감사원 감사, 세무당국의 세무조사, 경찰·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얼마든지 적발될 수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 송진욱 변호사는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최한 청탁금지법 설명회에서 “사업자가 접대비로 처리한 비용 중 건당 100만원을 초과하는 건은 국세청이 접대상대방이나 경위를 조사할 수 있다.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판단하는 경우 사회질서에 반한 것으로 보아 비용을 인정하지 않고 과세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또 “접대비 이외에도 사업자가 법인카드로 결제한 것 중 유흥주점, 상품권 구매 등 사업과 관련이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 사용경위를 조사해 부정청탁과 관련됐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외부인의 신고 가능성도 있다. 이 법에 따르면 누구든 청탁금지법 위반 사실을 수사기관에 신고할 수 있으며, 인정될 경우 포상금도 준다. 포상금 전문 강사들은 김영란법을 전문으로 다루는 ‘란파라치’ 강의까지 개설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경쟁사나 거래상대방, 내부자 등 가까운 곳의 적이다. 신고는 모두 비밀이 보장되는데다 위반자라 할지라도 자진신고하면 처벌을 면하거나 감형받을 수 있어, 내부인의 신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내고발제 마련·지속적인 교육 등 준법감시 필수
기업이 위반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행한 경우엔 임직원의 청탁금지법으로부터 면책될 수 있다. ‘상당한 주의와 감독’의 기준이 관건이다. 송진욱 변호사는 “직원이 상사에게 (위법사실을) 보고하지 않았다거나, 법인의 일반적인 감독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인정받기 어렵다”며 “결국 임직원들의 위법행위 자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준법감시 시스템을 구축하고 지속적으로 관리·감독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국3M 상무인 이병화 변호사(한국사내변호사회장)는 “회사 윤리강령과 취업규칙, 징계규정에 청탁금지법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 금품 등 수수금지에 관한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공직자와 교류할 때 대응요령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면책을 위한 사후조치로는 “위반행위가 보고되거나 의심스러운 행위가 발견되면, 신속하게 내부조사를 실시해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위반자에게는 징계 등의 시정조치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업의 상당한 주의·감독 정도를 정부가 참고로 제시한 자료도 있다. 최근 권익위가 발행한 청탁금지법 해설집에 따르면, 미국은 기업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부패방지 준법감시 시스템을 운영했는지를 두고 면책 여부를 판단한다.그 내용으로는 ▲간부 등 상층부에서 부패에 대해 용납하지 않겠다는 명확한 약속 및 정책 ▲자세한 윤리규정을 마련해 전 사원에게 전파·습득시킬 것 ▲조직 내 준법감시 책임자를 둘 것 ▲전사적이고 상시적인 교육으로 회사의 반부패 준법감시 정책이 철저히 확립될 수 있도록 소통할 것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