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를 찾아가는 경험
뒷모습을 찍어주는 엉뚱한 사진관이 있다. 사진을 찍고 나면 다소 이상한 이력서도 쓴다. 이 이력서의 빈칸은 불리고 싶은 이름, 가장 소중한 관계, 배우고 싶은 것,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 욕 실력과 아부 실력(상·중·하) 따위의 것들이다. 처음엔 웃으면서 보다가 쓰다 보면 숙연해진다. 그동안 지나치고 살았던 것들을 고민하며 스스로의 삶을 돌아본다.
지난해 말 예술가 그룹 ‘관계;대명사’와 서울문화재단 그리고 올림푸스가 합작한 엉뚱한 사진관 프로젝트다. 450명의 시민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타깃은 취업난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이었다. 이력서에 붙이기 위한 딱딱한 정면 사진 대신 뒷모습 사진을 요구하자 자유분방한 포즈들이 나왔다.
올림푸스의 니즈는 분명했다. 젊은 소비자들에게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고 좋은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우리 카메라 사주세요”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서울문화재단 제휴협력실의 문을 두드렸다. 기업의 니즈와 예산, 지향점을 파악한 재단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예술가들은 엉뚱한 사진관에서 나온 결과물로 설치 작품과 미디어아트 작품을 만들어 전시했다.
기업의 재원에 예술가의 창의성, 공공의 실행력이 만들어낸 하모니다. 프로젝트를 총괄한 서울문화재단 한지연 제휴협력실장은 지난 11일 중기이코노미와 만나 “올림푸스의 사회공헌 활동은 예술을 매개로 사회문제를 발견하고, 감각적으로 접근하며 시민들에게 치유를 줬다. 예술의 가치를 확장할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고 평가했다.
서울문화재단에선 예술로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싶어 하는 기업들을 컨설팅해 준다. 한 실장이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은 예술을 매개로 한 전략적 제휴다. 브랜딩 효과를 원하는 기업들은 돈을 대고, 재단은 예술 가치 확산이라는 공공성을 목표로 움직인다. 사회공헌으로 당장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버리라고 조언한다.
함께 고민할 준비가 안 된 기업들은 사양이다. 보통 기업들이 제시하는 사회공헌 예산은 3000~5000만원 선인데, 간혹 대기업에선 1억원 이상을 내밀며 “멋진 프로그램 하나 만들어 보라”는 식의 제안을 하기도 한다. 재원은 탐나지만 정중하게 거절한다. 예술을 통한 사회공헌은 기업과 공공, 예술가가 함께 협력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봐서다. 때문에 서울문화재단에서도 예산의 일부를 보조하고 있다.
예술단체를 후원하며 공짜표를 노골적으로 요구하거나, 개막식 테이프커팅 사진만 찍고 행사엔 관심이 없는 기업도 있다. 그래도 이전과 비교하면 예술 사회공헌에 대한 기업들의 인식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한 실장은 기업들과 만나 대화하는 과정도 인식 개선의 장이라고 본다. 기업들을 만나면 어려우니 도와달라는 말 대신 이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를 강조한다.
성과 측정은 예술 사회공헌이 풀어야 할 과제다. 기업은 목표를 설정하고 정량적 결과로 평가한 뒤 다시 돈을 쓸지 결정한다. 장학사업이라면 몇 명에게 얼마만큼의 장학금을 줬는지 평가하지만 예술은 쉽지 않다. 참가한 예술가나 관람객 숫자, 브랜드 이미지 개선으로도 평가할 수 있지만 전부는 아니다. 보다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 사회를 예술로 살찌우고 한층 풍요롭게 만드는 일이다. 정성적 평가일 수밖에 없다.
서울문화재단은 더 많은 중소기업들이 문을 두드렸으면 한다고 했다. 한지연 실장은 “제휴 사업의 모토가 ‘예술로 다름을 만든다(Make difference with the Arts)’는 거다. 각각의 기업에 적합한 사회공헌이 무엇 일지를 고민한다. 한성자동차의 경우 3년째 함께 해오고 있지만 매년 다른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며 “대기업들은 알아서도 잘 하지 않나. 중소기업들이 보다 많이 참여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중기이코노미에 2016년 8월 15일자로 보도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