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회장의 회복을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빠른 시일 내에 건강을 회복하고 사업으로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인생의 마지막 목표로 노력하겠다”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 특별사면 결정에 대한 이재현 회장의 화답이다. 4년째 법정싸움을 이어온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결국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죄목은 1600억대 횡령·배임 혐의였다. 이 회장은 2심까지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결정이 난 뒤 파기환송심 재판부에서도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로부터 8개월 후인 지난달 이 회장은 재상고를 포기했다. CJ그룹에서는 건강상의 이유를 들었다. 생명권과 치료권을 보장해 달라 호소하기도 했다. 반대편에선 다른 이야길 했다. 광복절 특사 대상에 들기 위해 일부러 재상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의도야 어찌됐든 이 회장은 풀려났다. 이번에 풀려난 이는 총 4700명이지만 대부분의 관심은 경제사범이다. 대기업에선 이 회장 단 한명이다. 정부에선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특사 기준이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 회장에 대해선 “지병이 악화돼 사실상 형 집행이 어렵다는 전문가 의견을 감안했다”고만 설명했다. 경제사범 사면 전반에 대해선 “죄질 및 정상관계, 향후 국가와 사회에 대한 공헌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중소기업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제한된 인원을 선정했다”고 뭉뚱그려 설명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수감생활을 못할 정도로 건강이 나빠서 풀어줬는데, 그 사람이 얼마만큼 국가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일각에선 벌써부터 이 회장이 경영일선에 복귀하면 활발한 인수합병을 진행할 거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 회장도 빨리 건강을 회복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겠단다. 이 회장이 얼마나 아픈지를 두고도 가타부타 말이 많다. 확인할 방법도 없거니와, 그게 중요한 일은 아니다. 불치병에 걸렸다고 잘못한 일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경제사범에 너무 관대하고, 우리 국민들은 심성이 착해 아픈 사람을 보면 측은지심을 느낀다. 앙상한 발목을 드러낸 이 회장이 휠체어에 실려 나오는 것을 보며 누군가는 의도된 장면이라며 비아냥대지만, 누군가는 아픈 사람한테 저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며 동정한다.
그러니 대기업 회장님들은 검찰이나 법원에 출두할 때마다 휠체어에 올라탄다. 클리셰처럼 말이다. 클리셰는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진부한 장면이나 상투적인 줄거리, 전형적인 수법이다. 여주인공은 위기에 처해도 결정적인 순간에 남자에게 구출되고, 악당은 사로잡은 주인공을 바로 처치하지 않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다 역습을 당한다. 비현실적인데도 계속 등장하는 이유는 그 안에 사회적 통념이 반영돼 있어서란다. 어찌됐건 이재현 회장은 풀려났으니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건 보편적인 인류애 관점에서의 응원이다. 그러나 정말로 이 회장이 활기를 되찾고 경영전선에 복귀한 모습을 본다면 조금은 씁쓸할 것 같다.
중기이코노미에 2016년 8월 12일자로 보도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