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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Jul 06. 2016

대한민국은 의전 때문에 망할거야

홍보일 하는 친구들과 이런 얘길 나눈 적이 있다. "대한민국은 의전 때문에 망할 거야" 의전(儀典)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의식(儀式)과 같은 말이라고만 적혀있다. 그렇다면 의식은 무엇인가. 행사를 치르는 일정한 법식이다. 현장에선 의식보단 의전이란 말을 많이 쓴다. 내가 굉장히 염증을 느끼는 일 중 하나인데, 그런 생각을 적은 글이다. 7월 4일 SK텔레콤 IoT 전용망 전국 상용화 선포식 취재후기다.




대기업 신제품 출시 행사는 정말 화려하다. 특급호텔 연회장에 화려한 조명이 무대를 채우고 실감 나는 영상이 벽면을 가득 메운다. 생생한 영상 퀄리티에 디스플레이 기술 발전을 몸소 느낄 수 있다. 4일 SK텔레콤의 사물인터넷 전국 전용망 ‘로라’ 선포식도 그랬다.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이었다. 진행을 맡은 아나운서는 이곳이 바로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전이 열렸던 역사적인 장소라고 소개했다. 가수 콘서트를 방불하는 화려한 조명에 무용수도 등장했다. ‘세계 최초로 IoT 전국 전용망을 구축한 SK텔레콤’이라는 수식어에 맞게 강렬하고 역동적인 무대를 펼쳤다.


SK텔레콤 부사장의 짤막한 소개에 이어 귀빈들의 축사가 이어졌다. 미래부 차관, 인공지능 전문가라는 카이스트 교수, 사물인터넷협회 부회장의 발언이 이어졌다. SK텔레콤은 바쁜 와중에도 자리해 준 미래부 차관에 연신 감사의 멘트를 했고, 상대편에선 귀한 자리에 초대해줘 고맙다고 화답했다. 카이스트 교수는 대학 연극부 시절 ‘로라’라는 배역의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 여학생과 결혼에 성공했다는 뜻밖의 러브스토리로 분위기를 달궜다. 대구광역시장, 한국전력공사 사장, 로라 원천기술을 보유한 셈텍의 대표이사, SK텔레콤 전속모델 설현의 축하 영상도 이어졌다.


저 투명하고 동그란 볼에 손을 올리며 팡파르가 팡! 하고 터지며 사방에서 현란한 조명을 쏘아댄다.


귀빈 축사나 영상 축하인사 모두 엇비슷한 얘기였다. 축하하고, 앞으로 잘 해보란 말이다. 선포식 내내 사물인터넷이 무엇인지에 대한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사실 그렇다. 사물인터넷이니, O2O니, 핀테크니 말들은 많이 해도 정확한 뜻은 알지 못하는 이가 많다. 사물인터넷 사업이 지금까지 SK텔레콤이 해온 M2M(Machine to Machine) 사업과는 무엇이 다른 건지, 산업과 이용자의 일상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귀빈들이 동그스름한 기계에 동시에 손을 올리면 팡파르가 터지는 이벤트와 지난한 기념촬영이 이어질 뿐이었다.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선 아주 기초적인 질문들이 쏟아졌다. “사물인터넷이라는 게 아직도 피부에 와 닿지 않는데… 쉽게 좀 설명해주세요” “사물인터넷 모듈은 또 뭡니까?”


사물인터넷 생태계를 키워나갈 파트너사에 대한 소개가 빠진 점도 아쉬웠다. SK텔레콤은 전용망을 깔아놓고 대여해주는 인프라사업자다. 나머지는 사물인터넷 기기 제조사, 서비스 개발사들의 몫이다. SK텔레콤이 파트너사 50곳과 제휴를 맺고 이번 사업을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날 선포식에선 SK텔레콤 IoT 파트너스 출범식도 겸했지만, 이름이 언급된 파트너사는 대표로 상장을 받은 곳 한 곳뿐이었다.


귀빈들의 기나긴 축사 대신 파트너사 소개에 시간을 할애하면 어땠을까. 파트너사 중 참신한 서비스를 하는 곳 5곳만 뽑아 3분씩만 소개해도 이 회사들에 큰 도움이 된다. 대기업 언론 행사에는 수십 개에서 많게는 수백 개의 매체가 모인다. 행사에 소개되면 여러 매체들에 보도된다. 판로개척이나 마케팅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대기업들이 상생, 상생하는데 사실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 정부 관계자들 모셔놓고 상생협약식을 할 게 아니라 이런 자리에서 중소기업 한 번 더 소개해주는 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중기이코노미에 2016년 7월 4일 자로 보도된 기사입니다.


SK텔레콤 파트너사의 대표에게 상장을 주고 나서 인사 중. 오른쪽에는 안내하는 직원. 이런류의 행사에 가면 으레 '용모 단정한' 여성들이 미소를 짓고있다.
제일 중요한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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