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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May 04. 2017

자취를 시작하고 알게된 6가지

약간 흐린날의 아침. 코스트코 근처 보도블럭은 유난히 깨끗해 심시티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1. 수도와 전기는 공짜가 아니었다


그동안 전기, 수도요금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본적이 없다. 그런 것이 부담이 된단 얘기는 들어봤지만 한번도 내 일로 생각해본적은 없었다. 마치 유니콘마냥 세상에 존재한다는데 한번도 본적은 없는 것처럼. 그런데 이제 나와 살다 보니 작은 것에도 예민해진다. 화장실 갈 때도 웬만하면 불을 켜지 않고, 빨랫감이 적은데 물이 잔뜩 들어간 채로 세탁기가 팡팡 돌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 맴이 아프다. 요란하게 작동하는 세탁기를 보며 "저녀석 대체 전력을 얼마나 쓰는거야.."라며 또 맴이 아프다. 지금껏 경험해본적 없는 일이다.


2. 영원히 끝나지 않는 청소의 길


그동안은 내 방만 청소하면 됐지만 이제는 침실, 거실(?원룸이긴하지만?), 주방, 화장실 모두 내 영역이다. 밤중에 열심히 바닥을 닦는데 다 닦은 것 같은데도 돌아서면 또 먼지랑 머리카락이 눈에 띈다. 하루종일 청소만 한다. 아직 집에 가구가 별로 없고 휑하다 보니 작은 먼지도 잘 보여서 견딜 수가 없다. 밤마다 무릎꿇고 바닥을 닦았더니 무릎이 빨개졌다. 내가 이 집에 살러 들어온건지 청소를 하러 들어온건지 모르겠다.



3. 이사하자마자 집들이하자고 조르지 말아야지


주변에 이사 소식을 전하니 집들이 하라고 난리다. 자신있게 놀러 오라 큰소리를 쳐놨는데 막상 하려고 보니 아직 우리집은 손님을 맞을 준비가 안돼있다. 식기, 수저도 두어개 뿐이고 의자도 하나뿐이다. 자질구레하게 정리해야 할 것들도 산더미다. 내 집에 대한 나의 로망은 저기 위에 있는데 지금 내 집은 고만고만한 수준이다. 지금까진 누가 이사했다고 하면 모든 준비가 끝나있다는 뜻인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더군다나 처음 독립한 경우에는. 앞으로 수개월간 하나둘씩 살림살이를 채워가야 할 것 같다.


평면도에 가구를 배치시켜보자.


4. 창문의 역할은 생각보다 많다


예전엔 창문을 환기용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창문이 하나뿐인 원룸에 살다보니 이게 꽤 크다는 걸 알게 됐다. 창문을 열고 닫음에 따라 방음 정도도 다르고, 채광도 달라진다. 이중창이라 그 차이가 더욱 클지 모르겠지만 창문을 열어두면 시원하긴 해도 소음이 심하다.(대형쇼핑몰 3개가 모여있어 자동차 천국) 오전엔 볕이 아주 잘 드는 편인데, 창문을 열어두면 눈이 심하게 부신데 닫으면 빛도 다소 차단된다.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건 뷰다. 높은 건물에 막힌 곳 없이 뻥 뚫려있어서 아주 기분이 좋다. 창문이 동쪽을 보고 있어서 아침엔 강제기상이다. 맑은 날에 햇빛이 세서 잠을 잘 수가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바깥을 보고, 잠들기 전에도 보곤하는데, 커튼을 달지 말지 한참을 고민했다. 어차피 반대편에 건물이 없어서 집 내부가 들여다 보이진 않을텐데, 옷 갈아입고 그럴땐 신경이 좀 쓰인다.



5. 이케아는 싸고 예쁘지만 정말 고생스럽다


이케아는 자취생들에게 천국이다. 가구보다도 홈퍼니싱 액세서리가 싼데다 종류도 많다. 예쁘기도 하고. 어제 정말 예쁜 레이스 커튼을 발견했는데 고작 7900원! 마음에 드는 물비누통도 2900원! 욕실 거울청소도구도 1500원! 샅샅이 뒤져가며 한가득 샀는데도 5만원밖에 안 나왔다. 다만.. 정말 고생스럽다. 사람이 너무 많고, 계산을 하려면 10분 이상 대기는 기본이다. 연휴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평소에도 사람이 정말 많다(ㅠㅠ) 빨리 고양점이 생겨서 광명점 손님들을 분산시켰으면..

내 차례는 언제쯤....


그 많은 짐들을 데리고 집에 가는 것도 일이다. 차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난 뚜벅이므로.. 250cm짜리 커튼봉을 간달프처럼 들고 커다란 장바구니를 메고 낑낑거리며 계산대 밖으로 나왔다. 계산을 기다리다 폐점시간을 조금 넘겨서 나왔는데, 출구가 모두 막혀있었다. 지하1~3층을 두번이나 빙글빙글 돌며 출구를 찾아헤맸지만 결국 찾지 못함. 인건비 절감의 아이콘인 이케아에서는 주차장에 직원 한명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연결돼 있는 건물인 롯데아울렛으로 넘어가니 보안요원 보여 출구를 알려달라했다. 지상으로 나가는 계단을 알려주길래 가봤는데 거기도 출구는 아니었다.. 이케아 비상계단이었을 뿐. 여튼 그 많은 짐들을 이고 40분가량 헤매다 결국 이케아 주차장으로 걸어서 나왔다. 위험해서 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무리 뒤져봐도 출구는  폐쇄돼 있고 직원은 한명도 없어서..


무거운 가구도 쇼룸에서 본다음 직접 셀프서브 구역으로 가서 가져와야 한다. 여기에 집까지 가져오기+조립 미션까지 있다. 간단한 스툴정도야 10분이면 조립하니 괜찮은데 소파는 꽤 어렵다. 조립서비스를 요청하면 가격은 올라간다. 이런저런 불편들을 겪고 나면 이케아가 왜 싸게 파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튼튼한 두 다리와 근력이 없다면 추천하고 싶지 않다. 나는 좋으니까 하는거고.


이런 혼자 라이프를 꿈꿨었지.. 그치만 이렇게 깔끔해 보이는 아침식사도 만들고 나면 계란 껍데기, 토마토 꼭지, 스트링치즈 봉지, ..


6. 웬만하면 집에서 요리는 하지 말자


부모님 집에 살 때는 요리를 굉장히 즐기는 편이었다. 퇴근하고 요리를 하며 심신수양을 했고, 주말에도 혼자 파스타를 만들어먹고, 브런치를 즐기며 행복해했다. 친구들을 초대해서 음식을 해주는 것도 좋아했다. 하지만 내 집에서 요리를 하고 보니 깨달았다. 그땐 주방을 빌려 쓰는 거라 즐거웠다는걸..


먹는 건 좋은데 치우는 게 문제다. 설거지를 하고 행주도 빨아야 하고 싱크대 물도 닦아야 하고..(싱크대 물때 낀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잔소리하던 엄마 맘 이제 이해 쏘리) 무엇보다 문제는 음식물쓰레기와 재활용쓰레기. 사진 속 사랑스러운 골뱅이 팔도비빔면만 봐도 그렇다. 골뱅이 통조림 캔이랑 팔도비빔면 봉지, 오이 꼭지, .. 쓰레기들이 생긴다.


골뱅이 팔도비빔면을 만들고 나면 통조림 골뱅이 캔이랑, 팔도비빔면 봉지랑, 오이 꼭지랑, ..


방들이 있는 집은 쓰레기를 시야에서 밀어놓을 수 있다. 근데 원룸은 그녀석을 갖다 버리기 전까지는 쓰레기들과 한 방에 동거해야 한다. 불투명한 쓰레기통에 넣어놔도 마음 한구석엔 그녀석의 존재가 느껴지는거지. 아직은 자취 초기라 청소와 위생에 열의를 보이기에, 바로 바로 재활용쓰레기를 분리수거장에 갖다 버리고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몇번 겪고 나니 요리 자체에 질려버리는거다. 집들이를 하겠다고 큰 소리를 쳐놓고 막상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이유 중엔 이것도 있다. 엄두가 안나.


배달음식은 괜찮지 않느냐, 하는데 딱히 그렇지만도 않다. 다 먹고 나면 약간의 음식물쓰레기도 남고, 플라스틱 및 종이 포장 용기들도 음식물 냄새가 나지 않게 깨끗하게 처리한 다음에 재활용함으로 보내야 한다. 언제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요즘 마음은 이렇다. >> 집에서 아무것도 먹지 말자.



2017.5.4. / 자취를 시작하고 알게된 것의 가짓수는 계속해서 추가 예정.

2017.5.13 / 6번 항목 추가




제니의 첫번째 책이 나왔습니다!

마케팅 부서 발령을 받았습니다. 5년간 기자로 일했기에 홍보 업무에는 자신이 있었고, 마케팅이라고 뭐 다를 게 있겠나 싶었습니다. 오만한 생각이었습니다. 누구나 마케팅을 말하지만. 진짜 체계적으로 잘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며, 매우 전문적인 분야입니다. 5년차 마케터인 제가 감히 '전문가'라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여러분과 같은 위치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과정들을 책에 담아 보았습니다. 너무 기본적이라 주변에 물어보기도 부끄럽고, 인터넷에 검색해 보아도 속 시원히 해결되지 않았던 부분들을 최대한 모아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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