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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May 10. 2017

여자 혼자 산다는 것


1. 퇴근길 역에서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주변에 사람이 없나 계속 두리번거리는 것


2. 우산을 들고 있는 날엔 언제든 우산을 휘두를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건들기만 해봐)


3. 로비에 낯선이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으면 서성거리다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


4.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문 너머로 낯선이가 있으면 몇층으로 가는지 볼까봐 다른층을 누르는 것


5. 엘리베이터에 내려 집 앞까지 걸어갈 때 주변에 누가 없는지 한번 더 살피는 것


6. 일단 현관문 앞에 도착하면 최대한 빨리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


7. 날씨가 더워 반바지를 입고 있다가도 집앞 편의점에 갈 때는 긴바지로 갈아입는 것


8. 쓰레기가 쌓여있어도 밤에는 지하주차장에 있는 재활용분리수거장에 절대 가지 않는 것


9. 밤에 편의점에 갔는데 낯선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떠나고 난 뒤 천천히 나가는 것


10. 혼자 있을 때 낯선 사람이 문을 두드리면 집에 없는 척 하는 것


과민한건가?


범죄의 표적이 된 그녀들도 본인에게 그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이건 혼자 살아서가 아니라 지난 30년간 살면서 늘 머릿속에 새기고 있는 마음가짐이다. 조심하라는 얘길 귀에 못이 박히게 들으며 그것이 당연하다 여겨왔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다. 조심한다고 살해당하거나 성폭행을 당하지 않을까? 그녀들은 조심하지 않아서 그런 일을 당한걸까?


화가 나는 거다. 왜 이렇게 조심하면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굳이 '한국에서'라는 말을 들먹이고 싶지도 않다. 전 세계 어디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뿐 마찬가지니까.


상대가 누구인진 모르겠지만 묻고 싶다. 내가 조심하면 죽거나 성폭행을 당하지 않을 수 있는거야? 밤엔 집밖에 나가지 않고 이중, 삼중으로 잠금장치를 하고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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