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넘게 살다 보니 지근거리에서 육아를 지켜보게 된다. 조카가 자라는 것을 가까이서 보며 한 사람의 인생은 아이가 있기 전과 후로 나뉘는 것 같단 생각을 많이 했다. 결혼은 그저 동거의 연장일 뿐, 진짜 큰 변환점은 출산과 육아라는 것도. 짧게나마 고양이와 함께 지내오며 많은 깨달음의 순간들이 있었고, 육아와 닮은 점들이 있어 적어본다. 감히 동물 기르는 것을 (신성하고도 난이도 높은) 육아와 비교하느냐는 관점으로 보지는 않았으면.
아침 7시에 출근해 퇴근하고 집에 가면 빨라야 7시다. 우리 집 고양이 밤이는 꼬박 12시간을 혼자서 지낸다. 고양이는 강아지보다 외로움을 덜 타 집에 혼자 있어도 괜찮다고들 한다. 나도 그 말을 믿고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길러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다. 내가 퇴근을 하면 냐옹 하고 달려 나와서 반겨주고, 밤새도록 놀아달라고 보챈다. 생각해보면 괜찮을 리가 없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함께 어울려 지내야지 혼자만 있는 게 좋을 리 없잖아. 퇴근이 늦어지는 날엔 너무 불안하다. 빨리 집에 가야 하는데, 하고.
놀자고 귀찮게 굴 땐 제발 잠을 좀 잤으면 싶다. 특히 밤에. 놀아달라며 자기 장난감을 모두 내 얼굴 옆에 가져다 놓고 내 얼굴을 운동장삼아 뛰어다닐 때면 진짜 화딱지가 난다. 처음 얼마간은 잠 때문에 정말 괴로웠다. 이불에 레몬도 뿌려보고(고양이가 레몬을 싫어한다 해서), 잠자기 직전까지 놀아주고 밥도 줘 보고, 이불속에 숨어도 보고, 몸줄에 묶어놓고 잠을 자기도 했다. 그야말로 전쟁 같은 생활이었다. 밤새도록 시달리다 새벽녘에 잠이 들어 늦잠을 자기도 일쑤. 한 달 동안 무려 5번이나 지각을 했다. 부장은 "자취를 시작해서 깨워줄 사람이 없어 그러느냐"고 했다. 차마 고양이 때문이라곤 못 했다.
그래도 막상 고양이가 곤히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깨워서 같이 놀고 싶다. 너무 오래 자면 살살 건드려가며 내가 되려 놀자고 조른다. 가끔 미안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이 녀석이 간밤에 나를 괴롭히는 것을 되새기며 "이 정도야 뭐"하며 깨운다.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천사다. 연신 쓰다듬고, 고소한 냄새가 나는 젤리를 만지며 뽀뽀도 한다.
영국 드라마 '셜록'에 나오는 대사다. 위급한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선순위를 드러내게 된다는 이야기다. 얼마 전 양치질을 하고 있을 때였다. 밤이도 나를 따라 화장실에 들어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창밖에서 끼익-하면서 차가 급정거를 해 충돌하는 소리가 났다. 우리 집은 높은 층임에도 그 소리가 너무 생생하고 크게 들려 정말 깜짝 놀랐다. 그 순간 나는 우리 고양이 이름을 외치며 허둥지둥 밤이를 찾았다. 내 근처에 있었고, 차 사고는 창밖 너머의 일임을 알면서도 순간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밤이가 우리 집에 온 지 일주일이 된 날이었다. 애가 갑자기 입맛을 다시더니 토를 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사료를 그대로 토해내더니 나중에는 더 이상 토할 것도 없는지 위액 비슷한걸 계속 뱉어냈다. 그 조그만 몸뚱이가 요동을 치더니 토를 해댄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설사까지 한다. 불과 며칠 만에 배변훈련을 마친 녀석이 이불 곳곳에 설사를 묻혀놨다. 깔끄미도 너무 아프니 그런 것까지 챙길 겨를이 없는 것이다. 새벽 다섯 시에 눈을 떠보니 방안 곳곳에 토사물이 널브러져 있다. 애는 몸이 힘이 쭉 빠진 채로 누워있는데, 털에도 토사물이 묻어있다. 그루밍을 할 정신도 없는 거다. 깜짝 놀라 아이를 씻기고 방을 치우면서 너무 속상했다. 24시간 동물병원도 알아보고, 웹서핑을 하며 상태가 괜찮은 것인지를 알아봤다.
너무 속상했다. 내가 제대로 거두지도 못할 생명체를 데려와 괴롭히고 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손바닥만 한 몸뚱이가 축 늘어져있는 것을 보니 내가 대신 아팠으면 했다. 애가 아픈 것도 속상하고, 엉망진창이 된 집도 속상했다. 그 며칠간 거의 잠을 제대로 못 자 엄청 예민해진 상태였다. 결국 감정이 뻥하고 터져버리고 말았다. 무릎을 꿇고 이 녀석을 앞에 놓고 엉엉 울었다.
네이버 지식인에 올라와 있는 고양이 관련 글은 다 읽어본 것 같다. 아주 작은 행동 하나부터 먹는 것, 자는 것, 싸는 것, 놀이, 교육시키는 법까지. 읽다 보면 내가 모르는 단어들이 많이 등장했다. 집사들이 주로 쓰는 고양이 관련 용어였다. 가령 이런 것들.
아깽이 : 아기 고양이
감자 : 고양이 모래에 응고된 소변
맛동산 : 고양이 모래에 응고된 대변
사막화 : 고양이 모래로 집안이 모래투성이가 되는 것
우다다 : 맹수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 고양이가 이유 없이 허공을 보고 날아다니며 활개를 치는 것
하악질 : 고양이가 위협을 느꼈을 때 이빨을 드러내고 '하악' 소리를 내며 심기가 불편함을 드러내는 것
젤리 : 젤리처럼 말랑말랑한 고양이 발
솜방망이 : 솜으로 된 방망이 같은 고양이 손
뭐 이런 것들이 있는데 어떤 세계나 고유의 언어 같은 것들이 있는 것 같다. 아이 키우는 친구들 언어를 보면 육아의 세계도 그런 게 있다. 얼집(어린이집), 문센(문화센터), 윰차(유모차) 같은 줄임말들도 그중 하나다. 이야기의 핵심 아니지만 덧붙이자면, 특정 집단에서만 사용하는 단어는 집단의 결속력을 강화시켜주고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업계나 학계에서만 쓰는 특정 용어들도 그렇다. 자주 쓰다 보니 편해서 그런다고들 하지만 본심을 들여다보면 내부와 외부를 구분 짓고자 하는 배타심이 깃들어 있다. 분명하게.
밤이를 데려오고 술약속을 줄였다. 술자리가 길어지면 혼자 조용히 도망 나온다. 원래도 안 했지만 외박 같은 건 꿈에도 못 꾼다. 밥이나 물이야 아침에 넉넉하게 주고 나오지만 하루 종일 혼자 있는 게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밤이는 내가 집에 도착해 현관문 번호키를 누르면 뛰어나오기 시작해 문을 열면 문 밖으로 튀어나온다. 하루 종일 기다렸다가 나오는 거다. 집에 도착하면 1-2분 정도는 냐옹냐옹거리며 날 따라다닌다. 고양이는 강아지에 비해 분리불안이 적고 혼자서도 잘 논다고들 하지만 그렇다고 집에 방치해둬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처음엔 이 녀석 하나로도 너무 버거웠지만 이것도 어느샌가 적응이 된다. 함께 사는 일이 익숙해지고, 늘 혼자 있는 아이를 보면서 자연스레 둘째 생각이 난다. 밤이는 고양이다. 고양이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데 운명의 장난으로 사람이라는 종과 함께 살고 있다.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별다른 훈련을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모래를 파서 대소변을 보고 묻어놓는 모습을 보면 종(種)에 새겨진 DNA의 힘은 강하다는 생각을 한다. 어미와 일찍 헤어져 제대로 훈련을 받지 못했지만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그런 일은 알아서 한다. 그러니 사람이 사는 집에서, 사람과 함께 사는 게 이 아이에겐 자연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거다.
고양이들끼리 뒤엉켜 노는 모습을 보면 밤이가 안쓰럽게 느껴진다. 이 아이도 그럴 수 있었는데 생이별을 했다. 다시 형제자매들과 만날 수는 없겠지만 친구 혹은 동생이라도 들여 소통할 수 있게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혼자 있을 때 적적하지도 않을 테고. 사람을 세게 무는 버릇도 고양이들끼리 있으면 개선될 수 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인간과 함께 산 고양이들은 무는 힘이 얼마나 센지를 알지 못해 힘 조절을 잘 못하는데, 동료들과 서로 물고 깨물고 싸우다 보면 정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주변의 아이 엄마들도 같은 고민을 한다. 하나만 낳아야지 다짐했다가도 혼자 노는 아이를 보면 둘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더란다. 아이가 하나뿐인 어떤 언니는 이렇게까지 말했었다. "둘째에 대한 고민은 내가 생식능력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멈추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바뀐다. 사소하게는 일상생활이 그렇고, 크게는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고양이와 함께 살기 전의 나는 어땠더라-하며 신기해하곤 한다. 불과 몇 달 안된 일인데 생각이 잘 안나는 거다. 동물, 그리고 생명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유기동물에 관심을 가지면서 진짜 못된 건 다름 아닌 인간이구나라는 것도.
그동안 - 다른 비 반려인들이 그러하듯 - 인간 중심 사고로 살았다. 고양이나 강아지를 좋아하는 편이었지만서도 물고 빠는 사람들을 보면 잘 이해가 안 됐다. 왜 저렇게 동물에 집착할까. 약간의 편견마저 있었던 게 사실이다. 뭔가 사람과의 관계에서 결핍된 게 있는 사람들이 동물로 빈자리를 채우려 한다는.
어느샌가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있다. 동물은 놀라운 존재다. 대화를 나눌 순 없지만 표정이나 몸짓, 행동으로 소통한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을 때가 많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렇다. 말이라는 커뮤니케이션 도구는 얼마만큼 완벽한가? 그 도구가 완벽하다면 인간 사이에는 불통이 없어야 하는데 그 말이라는 게 오히려 더 많은 오해를 낳기도 하지 않나. 때때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