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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Oct 15. 2017

성인들을 위한 넷플릭스 애니 : 보잭 홀스맨


한 달간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보잭 홀스맨'을 시즌4까지 정주행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반인반수라는 설정도 해괴해 보여 선뜻 손이 가지 않았지만 일단 한 편을 보고 나니 완전 빠져들어 보게 됐다. 진짜 내 스타일. 현실적이고 암울한 블랙코미디다.


주인공인 말+인간 보잭은 한때 잘 나갔던 할리우드 스타다. 잘 나갔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쓰레기같이 산다. 그의 옆에는 에이전트이자 연인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고양이가 있다. 이름은 프린세스 캐럴린. 아름답고 매력적인 고양이지만 나이가 어느덧 사십 줄에 들어서자 결혼과 임신에 초조해한다. 이 작품의 재미있는 점은 동물의 특징을 잘 살렸다는 거다. 프린세스 캐럴린의 사무실에는 방울 달린 스크래쳐(고양이 손톱을 갈아주는 장난감)가 있다. 우리 집 고양이가 쓰는 것과 똑같이 생겼다. 프린세스는 일을 하다 잘 풀리지 않으면 그 방울을 툭툭 쳐가면서 생각에 잠기곤 한다. 말인 보잭의 집에는 말발굽이 그려진 액자가 놓여있고, 강아지인 미스터 피넛버터는 냄새를 아주 잘 맡고 물건을 던지면 자기도 모르게 입으로 물어서 받아온다. 첫 화를 볼 때는 동물들이 어색하게 느껴지는데 보다 보면 이내 적응이 되어 이들이 전혀 동물이라는 걸 느끼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이들이 하는 말과 행동, 처한 상황이 너무나 현실적이라서. 이런 가운데 동물들의 특징을 간간히 비춰주는 설정은 이 작품을 맛깔스럽게 만든다.


영화를 보면 늘 특정 인물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데, 이 작품에선 다이앤 응우옌이라는 동양인 여성이었다. 보잭 홀스맨에 등장하는 몇 안 되는 '인간' 주인공이다. 이 여자는 베트남계 미국인으로 잘 나가는 방송인 미스터 피넛버터의 아내다. 보잭 홀스맨의 자서전 작가를 맡게 된 다이앤은 책을 기깔나게 잘 써 베스트셀러로 만든다. 사회정의와 페미니즘을 탑재하고 있는데, 나름대로 아픔도 있고 약점도 많은 인간이라 실패도 하고, 좌절도 한다. 스타벅스를 애용하지만 딱히 스타벅스가 좋아서는 아니고 편리해서 그런 것이라며, 동네의 작은 카페들이 더 좋다고 말하는 모습도 참 현실적이다. 다이앤은 베스트셀러 이후 마땅히 일감을 찾지 못하다 어중간한 인터넷 기자로 일한다. 다이앤은 이 세상에 꼭 필요한 뉴스를 쓰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어떻게 해야 기사가 먹힐 수 있을까 고민하는 모습이 나랑 꽤 비슷해 동질감이 든다. 


다이앤과 관련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하나. 올바른 것을 추구한다는 그녀는 당연하게도, 총기규제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러다 우연한 사격장에서 총을 쏴 보고, 총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지금까지 관념적으로 총기규제에 반대해왔던 그녀는 총을 지닌 이후로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길을 걷다 양아치 같은 놈들이 말을 걸어도 두렵지 않다. 물론 총을 쏘지는 않겠지만 단순히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보호받고 있다는, 묘한 안정감을 느낀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다. 그녀는 이렇게 생각한다. '남자들은 평소에 이런 마음으로 살겠구나.' 다이앤은 자신이 총을 가진 이후로 자유를 얻었다는 기사를 써서 여성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는다. 작품의 배경인 캘리포니아에선 여성들이 총기 소지가 유행처럼 번진다. 그러다 결국 사고가 터진다. 여성이 총기난사 사건을 벌인 거다. 그러자 남자들은 들고 일어난다. 이래서 여자들이 총을 소지하게 하면 안 된다고. 이와 관련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결국 법안이 개정돼 캘리포니아주에선 성별에 구분 없이 총기 소유가 금지된다. 남성의 총기난사 사건이 수백 건 벌어질동안 아무런 변화도 없었지만 딱 한명의 여성이 범죄를 일으키니 세상이 바뀐 것이다. 평소 총기소지에 반대해왔던 다이앤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총기 규제가 이렇게 허탈하게 성사되다니. 남자들은 여자가 총을 갖는 게 '그렇게까지' 싫었던 건가." 세상에 닳고 닳은 사십 대 여자 프린세스 캐럴린은 시니컬하게 대꾸한다. "몰랐어?"


보잭 홀스맨은 우울증, 자살, 가정폭력, 마약 중독, 군중심리, 낙태, 옐로 저널리즘, 악플, 공약 남발하는 정치인, 총기규제 등 미국 사회가 가진 문제를 동물의 얼굴을 빌려 깊게 파고든다. 비단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 수작이다. 



+. 넷플릭스에는 암울한 현실을 다룬 명작들이 많다.

내가 본 것 중 기억에 남는 것들. 기회가 된다면 하나씩 리뷰해보고 싶다.


- 블랙 미러 : 기술 발전은 얼마나 우리 인간들을 끔찍하게 만들어 버렸나.

-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 여자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모든 범죄자에겐 그만한 사정이 있다.

- 위즈 : 남편을 잃고 대마초를 팔기 시작한 젊줌마. Bitch 만세.

- 루머의 루머의 루머 : (솔직히) 왕따를 당하는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당신도 공범이야. 그래, 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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