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을 잡지 않으면 노예가 된다
1. 브런치에 오랜만에 글을 쓴다. 진득하게 노트북을 붙잡고 있는 것도 간만이다. 연말 저녁 모임에 뱃살은 늘어만 가고, 혼자만의 시간은 줄어간다. 무엇보다 요즘 글쓰기가 아닌 다른데 정신이 팔려서 그렇다. 나의 이 외도가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너무 즐겁다. 새로운 일, 새로운 도전. 못 말리는 딴짓왕.
2. 12월부터 회사생활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직책이 생겼다. 무려 일곱 글자나 된다. 파트장 직무대행. 원래 파트장이 있지도 않았건만 직무대행은 또 뭔지. 여튼 우리 컨텐츠파트가 기획팀에서 독립했다. 리더가 필요하니 네가 해라. 대리밖에 안 되니 파트장은 좀 그렇고 '직무대행' 정도가 괜찮겠네. 팀장이라는 방패막이가 사라지니 주인의식이 상당해졌다. 지금까지는 재밌는 기사만 쓰면 됐지만 이제는 운영도 해야 하고 기획도 좀 해야 되고 관리도 해야 하고 제휴도 해야 되고 파트원 의견 취합도 해야 된다. 무엇보다 '팀장님이 알아서 하시겠지'라는 마음가짐을 먹을 수 없게 됐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다.
이 회사에서만 여러 명의 팀장을 모셨다. 각자의 캐릭터가 분명하고 장단점도 뚜렷했다. 좋았던 점은 받아들이고 내가 싫었던 건 안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팀장 눈치 안 보고 편하게 일했으면 싶었다. 자기 일 끝났으면 정시에 퇴근하고, 연차 쓸 때 이유 같은 건 물어보지 않고, 병원에 가야 한다거나 급한 일이 있으면 양해를 구해서 다녀오고. 기본적으로 사람의 선심을 믿는다. 업무 분할이 잘 되어있다면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줄 거라 생각한다. 가끔은 딴짓도 좀 하고, 커피 마시고 수다도 좀 떨어가며 스트레스도 풀겠지만 큰 틀에서 보자면 업무를 망가트릴 정도는 아니다. 나 역시도 그러하니까.
좋은 리더가 되고 싶은 마음. 그들을 위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나를 위한 일인 것도 같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 일처리는 제대로 하면서 인간적으로는 좋은 사람. 불편하지 않은 사람. 그렇다고 우습지도 않은 사람. 참 어렵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지만 손아래사람이 어렵다. 손윗사람의 기분을 맞추고 대화를 하는 건 그리 힘들지 않다.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하며 상사와 트러블을 일으켜 본 적도 거의 없다. 그런데 손아래사람은 정말로 대하기 어렵다. 훨씬 눈치를 많이 보게 된다.
실무만 하고 싶었다. 취재하고 기사 쓰는 게 제일 즐거운 사람이다. 사람 관리하고, 평가하고, 싫은 소리 하는 게 정말로 싫다. 그런 일이 좋은 사람이 있겠냐만은. 몇 년 전부터 인생 선배들에게 이런 고민을 토로하면 다들 이렇게 답했다. "그래도 해야 할 때가 와." 연차가 쌓이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요구되는 역할이라는 게 있다.
3. 이 회사에 입사한 지 오늘로 딱 일 년이다. 벌써 일 년이 아니라 이제 겨우 일 년이지 싶다. 너무 길었고,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입사하자마자 매체를 론칭했고, 9월엔 회사가 분리됐고, 이번 달엔 파트가 독립했다. 내 삶의 변화도 컸다. 욕과 술이 늘었다. 언론사가 아닌 일반기업에 들어와 처음 겪는 일들이 많았다. 누군가와 함께 일한다는 경험을 제대로는 처음 해본 것 같다. 기자 집단은 공동체처럼 보여도 결국은 개인플레이였다. 내 이름 석자 걸고 하는 일이다. 소속 회사 이름만 바뀔 뿐이지. 언론사가 아닌 회사는 다르다. 내 이름이 드러나는 일보다 그렇지 않은 일이 더 많다. 일 떠넘기기와 정치싸움이 난무하는 세계다.
일하는 게 즐겁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을 적당히 조율해가며 지내고 있다. 갖가지 귀찮은 일이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쓰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회사 자체에 연연하지는 않으려 한다. 자의든 타의든 언제라도 여기를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을 갖지 않으면 노예가 된다. 회사란 건 사실 실체가 없는 존재다. 그저 사람들이 모여있고, 그 무리에 이름을 붙였을 따름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이다. 회사가 나를 집어삼키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