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출근 - 직장 생활과 연애의 공통점

by 일곱시의 베이글

어제 첫 출근이라 긴장했는지 집에 돌아오니 녹초가 되어 쓰러졌다. 오늘은 남편이 출근을 조금 늦게 해서, 내 아침을 차려주었다. 메뉴는 바게트 빵에 브로콜리 스프! 바게트를 에어 프라이어에 돌렸더니 엄청 바삭바삭하고 맛있다. 내가 새 회사에 적응하느라 정신적으로 고된 것을 알고 많이 배려해주고 챙겨준다. 참 고맙다.


버스를 탈까 지하철을 탈까 고민하던 중 둘 다 놓쳐버렸다. 9시 30분까지 출근할 생각이었는데 10시쯤 될 것 같다. 이 회사는 유연근무제를 시행 중이라 7~10시 중 아무 때나 출근해 일을 하면 된다. 아무리 그래도 출근 둘째 날이니 나의 동태를 공유해야 할 것 같아 10시에 출근 예정이라고 팀장에게 슬랙을 보냈다. 답 없음.


사무실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다 (..) 일정을 찾아보니 전사 회의 중인 것 같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재택근무 중이다. 전 직원의 10~15% 정도만 사무실에 나와 있는 것 같다. 나는 입사 초기라 적응을 위해 출근을 하고 있다. 업무에 익숙해지면 나도 재택근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전에는 영업팀과 미팅을 했다. 마케팅 담당자가 처음 왔으니 이런저런 할 얘기가 많은 것 같았다. 왜 회사는 바뀌었으나 영업팀과의 미팅 분위기는 똑같은 건지. 영업에선 마케팅이 현장을 잘 모른다고 생각하고, 브랜딩을 중시하는 마케팅에 대해 언급하면 ‘굳이..? 그 돈이면..’ 류의 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잦다.


내가 영업팀과 처음 미팅을 했다면 오늘 이런 미팅 분위기에 적잖이 당황했겠지만 익숙한 느낌이어서 우선은 충분히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일하던 곳과는 업계가 다르기도 하고, 지금은 내가 얼마나 잘났는지 떠들기보다는 듣는 시기라고 생각해서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내가 이 업계를 잘 모른다는 인식을 받았는지 약간은 무시하는 투로 이야기를 하더라. 딱히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다. 내가 싫어서 그런다기보다는 본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나중에 친해지면 또 말이 잘 통하고, 현업에서 돌아가는 이야기도 잘해주고 그렇다. 오늘은 우선 자세를 낮추고 회의에 임했다.


본 도시락 최고!

옆 자리 동료가 점심 식사에 초대했다. 오늘은 그 팀에 회의가 있어 오랜만에 다들 출근을 했다고 한다. 비도 오고 코로나19로 외식도 여의치 않아 본도시락 배달을 시켰다. 다른 팀 밥 먹는데 사이에 끼어 나도 열심히 먹었다. 업무 얘기는 안 했다. 지방 소도시 고령화, 미혼 직원 소개팅 시켜준 이야기, 사옥 이전 희망지, 부동산 시장 등 가벼운 주제로 얘기를 나눴다. 어색하지도 않고 불편하지도 않았다. 이 팀 직원들은 늘 재택근무를 하다 오늘 매우 오랜만에 모였다고 했다.


탕비실에 물이 없길래 옆 자리 동료에게 물어보니 곧 도착할 예정인데 아직 안 왔다며 본인이 마시려고 사둔 탄산수를 주었다. 어제도 한 병 받아먹었던 터라 1층 스타벅스에 가서 아메리카노 3잔을 사 왔다. 나와 내 주변 동료들에게 커피를 건넸다. 오후가 되자 탕비실이 가득 찼다. 온갖 과자며 음료수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견과류, 그레놀라요거트, 두유 같은 것들도 있었다. 다들 신나게 과자를 먹었다. 매주 화요일마다 탕비실에 간식이 채워진다고 한다.(메모) 덕분에 매주 월요일이 되면 기근에 시달린다. 보릿고개. 어제 탕비실에 아무것도 없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집에서 챙겨 온 맥 키보드와 트랙패드를 세팅했다. 역시 맥에는 맥 전용 입력기를 써야 편하다. 어제 일반 키보드로 일을 하는데 단축키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몰라 엄청 헤맸다. 일하면서 가장 많이 쓰는 복붙조차 어떻게 하는지 몰라 마우스로 했다. 내 장비를 채웠으니 어제 받았던 키보드와 마우스는 반납했다.


직장생활도 연애와 비슷하다.

직장생활도 연애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5년간 근무한 이전 직장에서 나는 서툰 첫 연애를 하는 사람 같았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보여주려고 했고, 내가 얼마나 쓸모 있는 사람인지 증명하려고 안달이 나 있었다. 페이스 조절을 하지 않고 주어진 시간 내 최대한 많은 일을 해내고, 또 새로운 일을 부여받았다. 그러다 보니 다른 팀원들보다 확연히 많은 일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다면 다양한 종류의 일도 마다하지 않고 했다. 포토샵, 일러스트, 프리미어 프로, html 작성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스스로를 잡부라 부르면서 필요한 일이 있다면 나서서 했다. 나에게는 많은 일이 주어졌고, 그중에는 중요한 일도 그렇지 않은 일도 있었다. 마다하지 않고 해내니 조직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승진도 하고, 급여도 많이 올랐다. 나는 이것이 만족스러운 동시에 불만이었지만 한번 굳어진 역할을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조바심이 나 있었던 것 같다. ‘못 한다’는 말을 하기가 죽을 만큼 싫었다.


이제는 그렇게 무리하지 않는다. 할 줄 안다고 큰소리치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일을 받지도 않을 생각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해내야만 하는 것에 집중하고 그렇지 않은 일은 다른 동료들과 나눌 것이다. 회사를 옮기면서 계속 다짐하는 일이다. 혼자 짐을 짊어지고 알아달라며 어리광 부리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해서도, 조직 차원에서도 절대 좋은 일이 아니다. 완급 조절을 하며 영리하게 일을 하고 싶다. 앞으로의 회사 생활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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