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랙 : 민첩한 소통, 앞담의 일상화

by 일곱시의 베이글

이직한 회사에서 사내 메신저로 슬랙(slack)을 쓰고 있다. 예전 회사에서도 우리 팀만 잠깐 슬랙을 썼었는데, 여기서는 자회사를 포함한 전 직원이 사내 공식 메신저로 슬랙을 쓰고 있다. 메신저라는 작은 도구가 업무 진행 방식과 조직문화에 끼치는 영향이 엄청나다고 느껴 적어보려고 한다.


인수인계가 필요하지 않은 문화


슬랙의 기본 정신은 '공유'다. 이론적으로 보자면 우리 회사에서 오가는 모든 업무 관련 대화는 대표부터 인턴까지 누구나 볼 수 있다.(사무실에서도, 집에서도, 지하철에서도) 슬랙을 이용하는 회사에서는 업무 관련 내용은 '채널'이라는 단체 채팅방을 생성해서 대화하는 것이 원칙으로 삼는다. 회사의 기밀이나 개인정보 등 민감한 사항을 제외하면 모든 대화는 공개된 장소에서 하라는 것이다. 설사 잡담이라 할지라도. 처음에는 이 문화가 좀 낯설다.


우리 회사에서 슬랙을 도입한지는 6개월 정도 되었는데, 약 200개 정도의 채널이 생성돼 있다. 영업팀, 마케팅팀, 개발팀 등 팀별 채널도 있고 TF별 채널도 있고, 공지, 교육, 잡담, 동호회 등 사교 목적의 채널도 있다. 나는 마케팅팀 소속이지만 언제든 우리 회사 모든 부서에서 어떤 대화가 오가는지 볼 수 있다. 가령 영업팀에서 요즘 이슈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영업사원들이 주로 소속돼 있는 채널에 들어가 최근 화두가 무엇인지 파악한다. 모든 직원들이 다른 직원들의 일일 업무 보고를 볼 수 있다.


나는 우리 회사의 1호 마케터다. 입사 전에도 누군가가 마케팅 비슷한 업무를 했지만 '마케터'라는 이름을 달고 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마케팅 인수인계 문서 같은 건 없다. 0부터 시작이다. 그렇지만 슬랙과 위키를 검색해보면 회사가 생긴 이래 오간 모든 업무 관련 문서들을 열람할 수 있다. 슬랙은 아직 도입한 지 얼마 안 되기는 했지만, 슬랙 검색창에 '마케팅'을 검색해 보면 지금까지 우리 회사에서 진행돼온 마케팅 관련 업무를 모두 볼 수 있다.


이 모든 게 충격이었다. 이전 회사에서는 조직의 폐쇄성과 무한한 전화 돌리기(공무원들이 시전하는 그것) 때문에 입사 초기에 정말 애를 먹었었다. 처음 마케팅 업무를 맡아서 다른 부서와 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인사팀에 팀별로 직원들이 어떤 업무를 하는지 알려달라고 했더니 보안 문제로 줄 수 없다고 했다. 정 필요한 거라면 인사팀장 수신, 마케팅팀장 참조로 요청 메일을 달라고 했다.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아서 됐다고 했다. 그래서 한 명씩 검색해보고 물어보면 모두 다 본인은 담당이 아니라고 하고, 그나마 친절한 몇몇 시니어들이 고릿적 자료를 공유해주었다. 골룸의 황금반지처럼 소중하게 자료들을 폴더에 정리해두었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그 자료를 공유해달라고 하면 원래 자료를 만든 이에게 물어보고 공유해야 했다. 한 회사 내에서도 자료를 함부로 공유하는 것은 금지돼 있었다.


그런 조직에서 일하다가, 아무한테 물어보지 않아도 키보드 몇 번만 두드리면 수년 치 방대한 자료를 접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모른다. 모든 것은 이미 존재하고 있다. 내가 찾아서 읽기만 하면 된다.


뒷담이 존재하지 않는 문화, 앞에서 치열하게 싸운다


사람들은 슬랙의 공개된 장소에서 토론을 한다. 우리 회사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물론 전 직원이 토론에 동참하는 것은 아니고 몇몇 스피커들이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C레벨도 우리 회사의 한계를 인정하고 터놓고 이야기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경영진들만 참여하는 채널도 일반 직원들에게 공개돼 있다. 기밀에 해당하는 내용은 비공개 채널이나 다이렉트 메시지(DM)를 통해 나누겠지만, '이런 대화까지 공개돼 있나' 싶을 정도로 대부분의 정보가 오픈돼 있다.


직원들은 경영진들이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궁금해한다. 내 기억 속의 리더 회의는 이렇다. 골방에서 2~3시간 마라톤 회의가 이어진다. 사장님의 고성이 간간히 들린다. 리더들은 땅이 꺼질듯한 한숨과 함께 회의실에서 걸어 나오고, 그 회의가 끝나고 나면 개미들에게는 일감 덩어리가 쏟아진다. 전후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하라니까 한다. 물론 지금 우리 회사에도 임원이 있고, 그들만 참석하는 회의가 있지만 이전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경영진은 자신이 누구를 만나고 어떤 내용으로 미팅하는지 구글 캘린더를 통해 공유한다.


신입사원이 임원한테 가감 없이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하고 반론을 제기한다. 소위 말하는 '까라면 까'가 여기서는 잘 통하지 않는다. 업무를 시키려면 논리적으로 납득을 시켜야 한다. 그러니 속도가 느릴 수도 있고, 잡음도 많을 수 있지만 납득이 되었다면 자발적으로 한다. 이런 문화의 차이가 조직문화를 다르게 만든다. 비슷한 직장인처럼 보여도 이렇게나 다르게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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