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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Jul 27. 2022

컨설턴트의 전우애, 반갑지 않은 두통

다른 프로젝트 지원 팀으로 들어왔다. IT기업인 고객사가  글로벌 법인 여러 곳에서 동시에 마케팅 캠페인을 진행하고, 그 결과를 분석하는 프로젝트다. 내가 투입된 시점에는 이미 캠페인이 완료되어 결과를 분석하고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과정이었다.


글로벌 프로젝트라 그런지 팀원들 모두 영어를 잘했다. 해외에서 태어났거나, 대학을 나왔거나, 일을 해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이런 배경들이 나를 조금 위축되게 만들기도 했는데, 이제는 한 3시간 정도면 극복 가능하다. 어차피 하는 일은 똑같다. 팀원 중 누군가 코딩을 할줄 아는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갖지 못한 기술을 가진 자들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괜히 열등감 가져봐야 나만 손해. 일에도 도움 안 된다.


지난 프로젝트와는 완전히 다른 성격이라 신선했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전사의 업무 프로세스를 파악한 뒤 그 속에서 효율화할 수 있는 포인트를 찾아내는 것이었다면, 이번 프로젝트는 실제로 캠페인을 집행하고 그에 대한 결과물을 내놓는 작업이었다. 훨씬 더 실재적이고, 구체적이고, 실행적이다. 앞선 프로젝트가 뜬구름 잡는 느낌에 업무 범위가 넓어 곤혹스러웠다면 이번엔 진짜 실행한 숫자를 어떻게 해석할지가 관건이다.


일 얘기는 이쯤 하고.


첫날 저녁에는 평양냉면을 먹으러 갔다. 오랜만에 평양냉면이라 맛있었다. 그보다 더 맛있었던 건 불고기!


정인면옥은 광명에 있던 평냉 집인데 장사가 잘되어 본점을 여의도로 옮겼다. 광명 살 때 몇 번이고 가려고 시도했으나 사람이 너무 많아 못 갔는데 이제야 와봤다.


여의도 야경이 참 예쁘다. 강남에서만 7년 정도 일하다 여의도로 넘어오니 좋은 건 주변 환경. 번잡하지 않고, 공원도 있고 한강도 보여서 좋다. 역시 제일 좋은 건 여의도공원이다. 점심시간에 공원에서 샌드위치 먹기. 해보고 싶었던 건데 소원 성취!


첫날 밤 12시에 퇴근을 했다. 다른 팀원들은 새벽 3시쯤 갔다고 한다.


그리고 둘째 날. 오후 1시경 고객사와 컨퍼런스 콜이 있어서 아침 일찍부터 점심까지 내리 일했다. 컨퍼런스 콜이 끝나고 배달음식을 먹었다. 12시쯤 배달 온 찜닭을 2시가 넘어서야 먹을 수 있었다. 당면이 불어서 툭툭 끊어졌다.



오늘도 야근 각인가.


셋째 날, 수요일.

오래간만에 밥 먹으러 나갈 여유가 생겨서 IFC 몰로 나갔다. 12시쯤 갔더니 어디든 웨이팅, 웨이팅, 웨이팅. 팀원 4명이 뿔뿔이 흩어져서 각자 줄을 서기로 했다. 나는 햄버거 가게에서 기다렸다. 밥 집에 줄을 선 동료가 차례가 되었다고 전화가 와서 갔는데, 팀원 1명이 더 온다고 했다. 주문까지 마쳤는데 가게에서 5명은 앉을 수 없다고 해서 그곳에서 나와 푸드코트로 갔다. 돌고 돌아 푸드코트.. 소 생선구이를 먹기 힘드니 생선이 들어간 정식으로 시켰다.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는 젊은이들은 생선구이 먹을 일이 잘 없다.


저녁 시간이 되었다.

오늘 저녁도 배달음식. 너무 몸에 안 좋은 음식만 먹는 것 같아서 건강해 보이는 걸로 시켰다. 명란, 아보카도, 가지, 나물 3종이 들어간 밥이다. 정말 맛있게 먹었다. 가볍게 저녁을 먹고 집중해서 일한 뒤 일찍 퇴근했다.(아마도 밤 9시 반쯤)


목요일. 드디어 끝이 보이고 있다. 일주일만 지원하기로 한 프로젝트라 내일이면 끝이다. 업무가 많아 힘들지만 그래도 본사에서 진행하는 거라 마음이 편한 건 있다. 고객사에서 근무할 때는 고객사와 한 회의실에서 일해야 해서 부담이 있었다. 직장상사와 바로 옆자리에 앉아 하루 종일 일하는 기분이라고 하면 알려나. 어찌 됐든 남의 사무실에서 일하니 조심해야 할 것도 많고, 통신, 출입 보안 등 불편한 것도 많다. 그에 비하면 본사 근무는 내 집에서 일하는 거니 편하다. 일할 공간도 충분하고.


이날 오후 4시에 고객사와 컨퍼런스 콜이 있어 또 열심히 달렸다. 컨퍼런스 콜 시작하기 직전까지 최대한 보고서를 잘 만들어서 컨펌을 받아야 한다.

그러니 점심은 당연히 자리에서 김밥... 모니터 앞에 앉아 밥 먹기 싫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무사히 컨퍼런스 콜을 마치고 피드백받은 내용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저녁은 연어 아보카도 샐러드. 야채를 좀 먹어야 할 것 같아서 고른 메뉴다.


집에 가자. 마지막 밤이다.


금요일. 드디어 금요일이다ㅠㅠㅠㅠㅠ

점심 먹으러 밖으로 나갔다.

여의도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제육볶음, 낙지볶음을 시켰다. 생선과 계란찜이 같이 나왔다. 정말 맛있게 먹었다. IFC나 더현대 같은 데 가지 말고 이런 데서 밥 먹어야겠어.


내가 맡은 장표를 마치고 드디어 일이 끝났다. 물론 프로젝트는 아직 2-3주 정도 남았지만 나는 다음 프로젝트를 위해 오프(OFF)다. 오프는 프로젝트에서 나올 때 쓰는 말인데, 뭐라고 순화해서 써야 할지 모르겠다.


팀원들과 PM, 나에게 업무를 배정한 파트너에게 마감 메일을 썼다. 지난 일주일간 어떤 업무를 진행했고, 관련 자료들은 어디에 있는지 등등. 고작 일주일간 일했지만 어찌 되었든 내가 맡은 부분이 있으니, 인수인계 차원에서.


5일간 함께했을 뿐이지만 너무 오랜 시간 함께하다 보니 동료애도 빠르게 쌓인다. 전우애 같다고나 할까. 한 3주 정도는 같이 일한 느낌이다. 들 정말 힘들게, 그리고 열심히 일한다. 몇개월간 잠을 못 자니 정신 상태가 몽롱하고 몸도 여기저기 고장난다. 나는 고작 며칠 있었음에도 몸에서 이상신호들이 왔다. 이명이 이따금씩 오더니 3일차부터는 밤에 머리가 깨질듯 아팠다. 혹시나 해서 진통제 있는 사람..? 하고 물었더니 팀원 4명이 일제히 가방에서 약을 꺼내는 걸 보고 마음이 짠했다. 다들 치열하고 힘들게 일하고 있구나.


낯설었던 이 회사에도 점점 아는 얼굴들이 늘어간다.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면서 짐을 쌀 때는 늘 홀가분함과 아쉬움이 공존한다. 그러나 남은 자들은 잠시 머물다 간 나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다. 나도 여러 번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무덤덤해질지도 모르겠다.


집에 와서 요 귀여운 녀석과 함께 쉬는데 어찌나 행복한지. 긴박한 분위기 속에 압축적으로 빠르게 일하고 이렇게 쉴 때면 정말 푹 쉰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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