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15분. 방금 집에 가는 택시를 탔다. 40분 후 도착 예정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택시에 몸을 싣고 창문 사이로 바람을 느끼며 일기를 쓰는데 기분이 좋다. 정확히 24시간 전에도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 있었는데, 어제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어제는 '이렇게 계속 살 수 있을까'라는 막막함이었다면 오늘은 '이 정도면 뭐,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다.
컨설팅 회사에서 새 커리어를 시작했다. 경영 컨설턴트는 팀을 꾸려 고객사에 방문한 뒤 업무 프로세스 개선, 마케팅, 조직문화와 같은 경영 전략을 제시하는 일을 한다. 프로젝트 기간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3-4개월 정도 고객사에 상주하면서 고객사 담당자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자료를 분석하고, 경영진 보고자료를 만든다.
말로만 들었지 직접 이 일을 해보는 건 처음인데, 들어와서 보니 딱 예상했던 대로의 느낌이다. 컨설턴트의 업무가 현업(컨설턴트들은 일반 회사를 이렇게 부른다)에서 경험과 비슷한 때가 있다면 매년 10월 경영 계획 수립 시즌이다. 그맘때쯤이면 지난 1년간 팀의 실적과 더불어 시장 상황, 경쟁사 동향 등을 바탕으로 내년도 전략을 수립한다. 수정에 수정에 또 수정을 거치는 고되고 힘든 시즌인데, 경영 컨설턴트는 그게 직업이라고 보면 된다. 과장 조금 더하면 매일이 성수기다.
컨설팅에도 종류가 여러 가지다. 컨설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전략 컨설팅은 기업의 인수나 장기 전략 제시와 같은 거시적인 부분을 담당한다. 컨설턴트들 중에서도 가장 학벌도 좋고 스펙도 뛰어난 사람들이 주로 한다. MBB(맥킨지, 베인, BCG)라 불리는 메이저 컨설팅 회사들이 탑 티어다.
나는 오퍼레이션 컨설턴트다. 이 동네에선 오퍼 컨이라고 부른다. 글로벌 빅4 회계법인 중 한 곳에 속해있고, 이와 같은 회사에선 회계 감사, 세무, 경영 컨설팅 등 기업 재무/회계/경영에 필요한 전문 자문업을 한다. 이름은 회계법인이지만 최근에는 경영 컨설팅 업계가 호황을 누리면서 컨설팅 인력 채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덕분에 나도 이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됐고 말이다.
나도 아직 프로젝트의 시작과 끝 풀 프로세스를 경험해본 것은 아니라 속단하기는 이르다. 지난주 입사해 어제 첫 프로젝트에 투입된 꼬꼬마 컨설턴트일 따름이다. 현업에서의 경력을 일정 정도 인정받아 시니어 직급으로 입사를 했다. 이번에 들어온 프로젝트는 기존 프로젝트 팀원이 급하게 다른 프로젝트에 투입되면서 결원이 생겨 대타로 오게 됐다. 프로젝트 막바지라 다음 주에 최종 보고를 앞두고 있다. 덕분에 가장 바쁜 시즌이다. 어제는 첫날이라고 일찍 들어가 보라고 해서 내가 제일 먼저 나왔는데, 그게 밤 10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