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공식적으로 첫 프로젝트 킥오프(kick off)다. 오늘부터 공식적으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물론 킥오프 전에 여러 과정들이 선행된다. 고객사에서 제안요청서인 RFP(Request for proposal)를 공지하면 우리 회사를 비롯한 여러 컨설팅펌들이 제안서를 작성하여 고객사에 제출한다.
제안서에는 우리가 어떤 역량을 가진 회사이고, 어떤 전문인력들이 이번 프로젝트를 맡을 것인지, 어떤 방법론과 계획에 따라 프로젝트를 수행할 것이며, 제안하는 금액은 얼마인지가 담긴다. 경쟁이 붙을 때는 경쟁 발표를 통해 비교해 보고 더 적합한 업체를 선정하게 되고, 사전에 염두에 둔 컨설팅펌이 있는 경우에는 해당 업체만을 대상으로 제안서를 받아보고 수의계약을 통해 컨설팅을 진행하게 된다. 후자의 경우 제안서가 아주 형편없는 수준이 아니라면 대개는 컨펌이 되므로, 컨설팅회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덜한 편이다.
업체 선정이 완료되면 양사가 계약을 맺는다. 이번 프로젝트의 업무 범위와 금액, 비밀유지 서약 등에 대해 협의하는 단계다. 준비 단계에서는 간과할 수 있지만 막상 프로젝트에 들어갔을 때 실무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업무 범위다. 국내 시장 마케팅 전략 수립에 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합의했는데, 막상 프로젝트에 돌입하면 글로벌 시장까지 범위를 넓혀 조사를 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객사 실무진의 관심사라기보단, 윗선에서 갑자기 보고자료를 준비해오라고 하는 경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컨설팅을 의뢰하는 입장에서는 ‘이 정도쯤은 당연히 해줄 수 있는 거 아니야’ 하지만 막상 업무를 수행하는 입장에서는 추가 작업이 필요한 일이라 부담스럽다. 업무 범위를 넘어서는 요구를 하는 건 아주 흔히 발생하는 일인데, 보통은 융통성 있게 처리하는 편이다. 면전에서 No라고 말하는 컨설팅펌은 거의 없다. 좋게 좋게 해야 다음 프로젝트도 또 따고 그러는 거니 말이다.
여하튼 이러한 제안서 작업과 계약에 이어 본격적으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내가 정식으로 어사인(assign)이 되어 프로젝트에 투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에도 2개의 프로젝트에 참여했지만, 어디까지나 ‘지원’이었다. 프로젝트 막바지에 최종보고를 준비하며 일손이 부족한 프로젝트에 추가 용병으로 투입되었던 것이다. 업무 막바지에 들어가다 보니 지금까지 진행돼온 히스토리를 몰라 반쪽만 이해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컨설팅에서는 업무 배정을 뜻하는 assign이 매우 중요하다. 업무 평가를 할 때도 내가 평가 기간에 얼마큼 assign이 되어 있었는지를 본다. 지난 1년 중 11개월 이상 배정이 되어있었다면 나의 업무 투입도는 95퍼센트 이상 될 것이다. 반면 6개월만 assign이 되어있었다면 업무 투입도는 50퍼센트밖에 안 된다. 이것이 직원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참고용으로는 활용된다. 95퍼센트 이상 일한 직원과 50퍼센트만 일한 직원을 동등하게 평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그것이 오히려 불공정 아닐까)
물론 50퍼센트만 업무에 투입되어도 월급은 똑같이 나온다. 하지만 나에게 업무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건 내가 이 조직에서 그만큼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고, 이를 견디지 못하면 퇴사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변호사들이 나오는 유튜브를 보니 그쪽 세계도 비슷해 보였다. 법무법인에서는 직원을 자를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냥 일을 안 주면 자연스럽게 제 발로 나간다고. 컨설팅 업계도 비슷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