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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Jan 05. 2016

인터넷에서 잊힐 권리, 어떻게 생각하세요?

‘잊힐 권리’ 심의제도·임시조치로 보장…“법제화 불필요”

연금 체납 내역 구글서 지워달라 소송 낸  스페인 남성

국내 포털 임시조치 45만 건…99%가 한 달 후 삭제

공인에 대한 합당한 비판까지 삭제될 우려


최근 인터넷 심의에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잊힐 권리’에 대한 법제화가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의 경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제도, 임시삭제 조치권 등을 통해 충분히 권리가 보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잊힐 권리가 공공의 알권리와 충돌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황창근 홍익대 교수는 지난 11일 프라이버시 정책연구포럼이 주최한 국제 컨퍼런스에서 “잊힐 권리와 관련된 제도는 현행법으로도 충분해 보인다. 잊힐 권리에 관한 법률이 없다면 입법에 공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입법이 필요하지 않은 영역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잊힐 권리란 개인이 인터넷상에 게재된 자신에 대한 불편한 정보를 다른 사람들이 검색할 수 없도록 검색엔진에게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해당 정보가 담겨 있는 원문을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검색 결과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정보삭제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개념이 처음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2014년 5월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 이후부터다. 스페인 변호사인 코스테야 곤젤라스는 1990년대 후반 연금부담금 체납으로 재산을 압류당했고 해당 사실은 스페인의 한 신문에 경매 공시로 게재됐다. 그로부터 약 10년 뒤인 2009년, 곤젤라스는 구글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면 해당 보도가 노출되는 것을 발견했다.


이 남성은 체납액을 모두 변제했으니 기사를 삭제해달라고 요구했으나 신문사는 거부했다. 결국 이 사건은 유럽사법재판소에 회부됐고, 재판부는 구글 측에 검색 결과를 삭제하라고 판결했다. “개인정보가 부적합하거나, 더 이상 연관성이 없거나 과도한 경우 검색 결과에서 삭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이 있은 뒤 한국에서도 잊힐 권리 법제화에 시동이 걸리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5월 잊힐 권리 도입 관련 세미나를 열고 각계의 의견을 수렴했다. 그러나 잊힐 권리를 위한 추가적인 법제화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이번에 황 교수의 주장이다. 한국의 경우 이미 인터넷 심의, 임시조치 제도를 통해 충분히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 심의제도란 특정인의 명예훼손, 권리침해, 불건전 정보 유통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시정 조치를 하거나 삭제하는 것을 말한다. 음란물부터 특정인에 대한 권리침해까지 폭넓은 정보를 심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 제도를 이용하면 행정기관을 통해 원문을 삭제할 수 있으므로 잊힐 권리를 실현할 수 있다는 논리다.


심의 없이 곧장 게시물을 차단할 수 있는 임시조치권도 있다. 정보통신망법 44조에 따르면 이용자가 권리를  침해받았다며 게시물에 삭제 요청을 하면 포털은 권리침해 여부를 판단한 뒤 30일간 임시삭제 조치를 하게 된다. 30일 이내에 원 게시자가 이의 제기를 하지 않으면 해당 게시물은 최종 삭제된다. 지난 10일 새정치연합 유승희 국회의원이 방통위로부터 받은 인터넷 포털 임시조치 관련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포털사업자가 임시조치 처리한 게시물만 45만건이었다.



황 교수는 “임시조치는 곧장 해당 게시물을 보지 못하도록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제도로 명예훼손 분쟁에서 많이 이용되고 있다.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로 웬만한 개인정보 권리침해는 여기서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잊힐 권리 보장이 공인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까지 막는다는 지적도 있다. 유승희 의원에 따르면 국내 포털사업자는 지난해 임시조치가 접수된 글을 100% 임시 조치했으며, 30일 후에는 99%가 삭제됐다. 개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한 경우라면 삭제하는 것이 합당하나 공인에 대한 합리적인 문제제기마저 ‘권리침해’라는 명목으로 삭제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유럽사법재판소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유럽정보사회연구소 마틴 후소벡 연구원은 이날 컨퍼런스에 참석해 “당시 재판부는 구글이 검색 결과를 삭제해야 한다고 판시하면서도 정치인, 판사 등 공공적인 논의가 필요한 경우 정보 삭제권이 실행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했다.


유럽사법재판소가 정보 삭제권을 신청자의 ‘이름’으로 제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후소벡 연구원에 따르면 재판부는 스페인 변호사의 사건에서 ‘코스테야 곤젤라스’라는 이름을 검색하면 기사가 노출되지 않지만 ‘체납’, ‘재산압류’, ‘경매’ 등으로 검색했을 때는 노출될 수 있도록 했다. 개인이 자신에 대한 불편한 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공의 알권리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글은 중기이코노미에 2015년 9월 14일자로 보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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