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갑 채워진 재벌, 영화로 대리만족…언제쯤 현실 될까
어쩜 저런 인간이 다 있을까 싶다. 천만 관객 돌파를 앞둔 영화 ‘베테랑’의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 분) 얘기다. 마약중독에 여성편력, 폭력성까지 갖춘 그는 제정신이 아닌 듯 보인다. 사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의 악행은 대부분은 현실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여러 실존인물의 만행을 조태오라는 한 캐릭터에 반영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극 중 맷값 폭행 사건을 보면 재벌 2세인 최철원 전 M&M 대표가, 마약은 한화 김승연 회장의 차남인 김동원 씨가, 특별사면 암시를 보면 수많은 경제사범 특사가 떠오른다. 결국 영화는 조태오가 수갑을 차는 장면으로 통쾌하게 끝을 맺는다. 재벌이 아닌 일반 관객 입장에서 보자면, 해피엔딩이다.
현실은 달랐다. 맷값 폭행의 당사자인 최철원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지난해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붙잡혔던 김승연 회장의 아들 김동원 씨는 1년 만에 한화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회삿돈 500억원을 횡령했던 SK 최태원 회장은 지난 14일에 광복절 특사로 석방됐다.
최태원 회장은 날개 돋친 듯 활발한 행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5일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준공식을 찾아 다시 한 번 돈독함을 과시했다. 최 회장은 “밤낮으로, 정말 밤낮으로 여념이 없으신 대통령님”이라는 발언으로 화답했다. 자신을 풀어준 대통령에 대한 고마움은 십분 이해가 되나 그렇게까지 존경심을 표시해야 했나 싶다.
영화 베테랑 흥행의 이면에는 관객들의 대리만족이 자리하고 있다. 죗값을 치르지 않는 재벌을 보며 답답함을 느꼈던 이들이 베테랑 형사의 활약으로 정의가 구현되는 모습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영화로 대리만족을 해야 할까. 죄를 짓고도 활개를 치고 있는 최근 재벌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앞날이 밝지만은 않아 보인다.
중기이코노미에 2015년 8월 28일 자로 보도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