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원 Oct 01. 2015

너무 편한 대형마트, 너무 빠른 택배

얼마나 더 편리해져야 우리는 만족할까

#1.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12월의 밤. 평소 조용하던 동네에 차량 지나다니는 소리가 이따금씩 들렸다. 제설차량이었다. 이튿날 아침 주변이 모두 눈으로 뒤덮인 가운데 차도와 인도만은 깨끗이 정리돼 있었다. 모두가 잠든 사이 누군가는 열심히 일한 덕분에 누릴 수 있는 편리(便利)였다.


#2.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위법이라는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이 났다. 이 건을 취재하던 중 한 블로그에서 생각지 못한 글을 발견했다. 대형마트 임대점주라는 글쓴이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사라지면 한 달 중 하루도 쉴 수 없을 것이라며 처지를 한탄했다.


“한 달에 2번 쉬는 날만 보고 일했는데… (위법 판결이) 잘된 일은 아니라고 봐요. 남들 일할 때 일하고, 남들 쉴 때도 일하죠. 소비자의 편리함도 중요하지만 그곳에 일하는 사람들도 한 번쯤 생각해줬으면 해요. 우리도 사람이고,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가족이거든요” 대형마트에서 일한다는 여성 한 명도 이 말을 거들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엔 가족과 함께 주말을 보낼 수 있었는데, 만약 없어진다면 우리 아이들은 엄마 없이 주말을 보내야 하네요”라고.


#3. 오랜만에 인터넷 쇼핑으로 옷을 주문했다. 언제쯤 도착할까 싶어 배송이 들어간 날 밤 택배추적을 해봤다. 발송지가 경남 진주이기에 여유를 갖고  기다려야겠구나 했다. 그래 놓고 다음날 아침 그 새를 못 참고 또 택배 조회를 해봤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진주에 있었던 배송물은 내가 사는 지역 우체국까지 와 있었다. 경로를 보니 오전 1시에 대전, 오전 5시에 안양을 거쳐 아침에 우리 동네까지 온 것이었다. 뜻밖에 빨리 받게 돼 기뻤지만 한편으론 씁쓸했다. 빠른 배송을 위해 누군가는 밤새도록 일을 했겠구나. 이렇게까지 빠를 필요가 있을까?


택배업계에 따르면 지난 10년 새 택배 물동량은 4배 늘어난 반면, 택배 단가는 떨어졌다. 1997년 4000원이었던 택배 단가는 최근 2500원 이하로 떨어졌다. 온라인 쇼핑 시장이 커지고 택배 업체들 간의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택배비는 점점 싸졌다. 덕분에 택배기사들의 일거리는 늘어나는데 돈벌이는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소비자 편리를 위해 기업들은 꾸준히 서비스를 개선해 왔다. 대형마트가 그렇고, 택배서비스가 그렇다. 대형마트는 참 편리하다. 소비자에게 필요한 모든 물건들을 잘 짜인 동선에 맞게 배치해 두고, 맞벌이 부부를 위해 늦은 밤과 휴일에도 영업을 한다. 택배도 그렇다. 스마트폰으로 물건을 주문하면 보통은 하루 뒤에, 빠르면 당일에도 내 집 앞에 도착해 있다. 나의 편리는 누군가의 야간근무와 휴일근무의 결과물이다.


우리가 잠자는 사이에 일한 그들에게 뒤늦은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변하려는 건 아니다. 대형마트 근무자나 물류업 종사자들이 선의를 갖고 소비자를 위해 일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노동을 하고 돈을 번다는 점에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한 번쯤은 그들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기업은 자본의 논리를 따른다.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줄 기세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노동이 수반된다. 가정을 짊어진 그 누군가는 돈을 벌기 위해 스스로의 건강권과 휴식권을 내놓는다. 소비자 편리가 주는 명과 암이다.


중기이코노미에 2014년 12월 26일 자로 보도된 기사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멀고 험한 부실채권 회수 “사전예방 중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