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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May 18. 2016

화장품 쓸어담는 中 보따리상 “상표 침해 심각”

해외 대리인 관리도 어려워…제품 기획단계에서 상표권 준비를

‘윤고’ 상표권을 중국 상표 브로커에 빼겼던 LG생활건강은 현재 중국에만 400개의 상표를 출원했다. <사진=LG생활건강>


“중국에서 이렇게까지 뜰 줄 몰랐어요. 그래서 상표 출원도 미뤄뒀고요. 형사고소하고, 가처분 신청하고….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중국 브로커에 샴푸 ‘윤고’ 상표권을 뺏겼던 LG생활건강 민경환 파트장의 말이다.


◇LG생활건강, 예상 못한 대박에 ‘뼈아픈 실수’=17일 특허청이 주최한 국제출원 설명회에 발표자로 나선 민 파트장은 “한국의 수많은 브랜드가 중국 상표 브로커 때문에 골탕을 먹고 있다. 제품 기획 단계부터 상표권을 준비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 보따리상 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말 뜻 그대로 보따리상을 생각하면 안 돼요. 커다란 여행용트렁크에 오만원짜리를 가득 채워 와서는 한국에 있는 화장품을 모조리 ‘긁어’ 갑니다”


이렇게 유출된 제품들은 바로 상표권 침해 대상이 된다. 민 파트장에 따르면 몇 년 전만 해도 중국 짝퉁 상표와 제품이 허술했지만 이제는 너무나 똑같아 원조 기업 직원들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했다.


‘윤고’는 예상치 못한 대박 상품이라 미처 상표권 준비를 못했다고 했다. LG생활건강은 딱히 해외에서 팔 계획이 없었다. 그런데 한국에 온 중국인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상표권이 침해당했다. 짝퉁 상표를 출원한 브로커는 한 명이 아니었다. 중국에서만 30개의 ‘짝퉁’ 윤고가 출원됐다.


<그래픽=이혜원 기자>   ©중기이코노미


조직적으로 한국 상표만 출원하는 중국 상표 브로커도 있다. 중국 심양신사격림유한공사 김광춘 대표는 회사와 개인 명의로 한국기업 240개의 상표 350개를 출원했다. 풀무원, 하림, 국순당, 천호식품, 네이처리퍼블릭, 귀뚜라미 등이 피해를 입었다. 민 파트장은 “김광춘씨는 유사상표도 아닌 동일상표를 대거 중국에 출원했다. 이들은 죄의식도 없다. 선출원주의 국가에서 먼저 출원하는 건 당연하다며 사업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LG생활건강은 중국에서만 400개의 상표를 출원했다. 브로커들에는 법적 대응 중이다. 민 파트장은 “중국을 제2의 국내시장으로 인식하고 출원 대상을 늘려가고 있다”며 “브로커와 신사적 협상은 하지 않는다. 취소심판 등 법적 대응을 하는 한편, 전문업체를 선정해 온오프라인에서 짝퉁 제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대리인 골머리…‘마드리드 출원’ 이용해 볼만=이날 설명회에 참석한 대기업 지식재산 담당자들은 해외 대리인 선정에도 어려움을 토로했다. 해외에 상표를 직접 출원하려면 현지 특허법인이나 법무법인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관리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민경환 파트장은 “한국 대리인들은 전반적으로 수준이 비슷한 반면, 중국이나 동남아는 차이가 크다. 속된 말로 ‘기본이 안 된’ 대리인도 너무 많다”며 “대리인을 선정할 때는 해당 업체의 웹사이트 등을 통해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괜찮은 업체인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래픽=이혜원 기자>   ©중기이코노미


현대자동차 백인철 대리는 “미국, 유럽 등의 대리인은 빠르게 업무 처리를 진행하는 반면 개발도상국에서는 절차가 더딘 경우가 많다”며 “지난해 12월에도 한 해외 대리인에 상표출원을 요청했는데 3월까지 진행사항이 없기에 연락해 보니 출원서조차 내지 않았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마드리드 출원제도를 활용하면 대리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한국 특허청에 상표 출원서를 내면서 원하는 국가를 지정하면 해당 국가에서 상표 등록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현대차는 해외에 1만7400건의 상표권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중 5900건을 마드리드 출원제도로 등록했다. 2006년만 해도 이 회사의 마드리드 출원 이용률은 개별국 출원 대비 8.4%였으나 2015년에는 132%까지 늘었다. 국가별 출원보다 마드리드 출원 숫자가 많다는 의미다.


비용 절감 효과도 크다. 해외 대리인 비용이 일절 들지 않는 것은 물론, 현대차같은 대기업은 출원 비용 자체도 대폭 줄일 수 있다. 백 대리에 따르면 현대차는 신차를 출시하면 세계 180개국에 상표를 출원한다. 국가마다 상표를 출원하고 비용을 납부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마드리드 출원제도를 이용하면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에 관납료만 내면 된다.


소수 국가에만 출원한다면 개별 출원 비용이 관납료보다 저렴할 수 있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몇 개국 이상일 때 마드리드 출원을 이용하는 것이 비용 면에서 이익일지가 관건이다. 백인철 대리와 민경환 파트장의 의견을 종합하면 통상적으로 5개 이상의 국가에 출원한다면 마드리드 출원이, 그 이하라면 개별국 출원이 유리하다.


중기이코노미에 2016년 5월 18일자로 보도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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