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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고래 Dec 22. 2020

로'스테리아

타국에서 만난 소울푸드 레스토랑

우연한 맛집 발견!

늦은 밤, 타국, 낯선 거리를 걷다 만난 로'스테리아 (l'Osteria).

잘츠부르크 젊은이들에게 힙(hip)한 장소를 찾기란, 일부러 노력해도 이방인에게는 쉽지 않았다.


독일에서 만난 외삼촌 부부와 오스트리아로 함께 떠난 여행이었다.

모차르트의 고향으로 더 알려진 작은 도시, 잘츠부르크.

이곳을 이미 여러 번 방문했던 외삼촌이었지만

그에게도 이 나라는 타국이었다.


인터넷 검색에 조금 더 능숙한 조카들의 실력 발휘가 필요했다.

로'스테리아는 그렇게 검색된 레스토랑이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빈자리를 기다리는 젊은이들로 바글거렸다.

어디부터가 기다림의 끝이고 시작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이방인의 어리숙함으로 이리저리 눈을 굴리던 중, 어느 점원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나는 그를 향해 걸어갔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요?" (나름 당당하게)

"몇 명인가요?" (조금은 당황한 듯한 표정)

"네 명이요." (좀 더 당당하게)

"10분 정도." (자신 없는 목소리)

"여기서 기다리면 되나요?" (주변이 시끄러워 큰 목소리로)

"잠시만요." (작게 손짓하고 급하게 사라짐)


일행에게 돌아온 나는, "10분 정도 기다리래..."라고 말하면서도,

10분으로는 도저히 해결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긴 줄을 보았다.


어쨌든 우리는 안심했다.

우리가 '여기', '있음'을 알린 까닭이고,

길고 긴 줄 사이 어디쯤엔가 우리의 자리도 있을 거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급히 사라졌던 점원이 다시 나타났다.

그의 눈이 무언가 바쁘게 찾는 듯했는데 나하고 눈이 마주쳤다.

이번엔 그가 먼저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앞장서 걸었고, 나와 일행은 급하게 그를 쫓았다.


로스테리아의 홀은 네온등으로 장식되어 있었지만 조명이 어두웠다.

테이블 간격도 좁아 빽빽했고 배경음악과 사람들의 목소리가 섞여 시끄러웠다.

우리는 홀을 통과하여 점원을 따라 한참을 들어갔다.

그렇게 들어간 곳은 길쭉하고 좁은 복도형의 공간이었다.

아이보리 벽돌이 아치형으로 천장까지 두르고 있고,

테이블이 구별되어 있어서 비교적 조용하고 아늑했다.

공간 하나를 통과했을 뿐인데... 마치 미래에서 과거의 공간으로 이동해 온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를 안내한 점원은 메뉴판을 남기고 다시 급하게 사라졌다. 점원이 입은 새하얀 코스튬 탓인지, 앞서 느낀 기분 탓인지, 우리 일행을 빠르게 안내한 그의 존재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잘츠부르크 역에서 약 2km가량을 걸어왔던 우리는 피곤한 몸을 의자에 던졌다. 그리고 토마토소스의 피자와 크림소스의 리소토, 샐러드 등의 메뉴를 골랐다. 음료는 탄산수를 선택했다.


외삼촌은 독일에서 몇 년을 살았지만 여전히 탄산수가 낯설다고 했다.

"삼촌, 요새 한국에서도 탄산수 많이 마셔."

그의 눈엔 탄산수를 주문하는 조카들의 모습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외삼촌은 넘사벽(넘을 수 없는 장벽) 탄산 대신 무알콜 맥주를 골랐다.


그는 여전히 타향의 음식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다. 

너무 짜서 맛을 모르겠다는 것이 유럽 음식에 대한 그의 총평이었다. 외숙모는 그래서 외식은 거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요리를 하는 주부에게 외식이란 단순한 식사가 아닌 휴식을 위한 필수 코스라는 것을 외삼촌은 모르는 눈치였다.


생각보다 음식이 빨리 나왔다.

테이블에 피자 도우와 똑같은 크기의 종이를 펼치더니, 피자를 그 위에 올려놓았다.

음식을 그릇에 담아내지 않는 것에 다소 놀랐지만 나름 신선했다.

사람이 붐비는 핫플레이스에서 설거지를 줄이는 효율적인 방법인 듯했다.


배고팠던 나와 언니는 환호를 지르며 음식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반면, 외식에 익숙지 않은 외삼촌 부부의 모습은 무척 조심스러워 보였다.

외삼촌은 천천히 씹는 듯하더니 이내 표정이 밝아졌다. 음식이 먹을만한 모양이었다.


곧이어 우리가 주문한 버섯 리소토가 테이블에 올라왔다.

'음...' 고향의 맛이었다!

한국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먹던 바로 그 맛!


언니와 나는 유럽 여행 중 여러 번 이탈리안 음식을 시도했지만,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우리는 암암리 '이태리 음식도 역시 한국이 최고!'라는 결론에 다다라있었다.

그런데 로'스테리아의 음식 맛은, 우리가 한국에서 먹던 바로 그 맛이었다. 이곳이 사람들로 붐비는 이유..., 어쩌면 여기가 핫플레이스(hot-place)인 이유는, 유럽인들의 입맛도 나의 입맛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외삼촌, 리소토 얼른 먹어 봐요. 정말 맛있어!"

"그래? 음식 이름이 뭐라고?"

"풍기 리소토! 크림소스로 만든 버섯 리소토예요."

"버섯..."

외삼촌과 외숙모는 리소토를 한 숟갈씩 그릇에 담았다.


"음..."

"어때?"

"오~ 이거 정말 맛있다! 이게 뭐라고?... 리소토?"

"응, 풍기 리소토."


외삼촌은 정말 맛있었는지, 이번엔 크게 한 숟갈을 담았다.

"어릴 적 너희 외할머니가 해주던 음식이랑 뭔가 비슷해."

"오 그래? 그게 뭐였는데?"

"음.. 종종 수프를 끓여줬는데, 거기에 밥 말아먹는 것 같아."  

"수프~! 맞아, 나도 엄마가 수프에 밥을 말아줬는데 외할머니가 원조였구나!"


음식과 입맛이 가족의 내력을 갖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엄마에게서, 엄마는 할머니에게서,  할머니는 증조할머니로부터......

내가 먹어  음식과  조리법의 역사가 계속 거슬러 어디까지 올라갈  있을지가 궁금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리소토의 인상적인 맛을 통해 삼촌은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어쩌면 오랫동안 잊고 지낸 엄마의 기억,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렸을 것이다.

타향에서 만난 부드럽고 진한 소울푸드의 , 그 흔적 같은 맛이 나도 덩달아 반가웠다. 


외삼촌이 만족스럽게 먹는 모습에, 외숙모도 놀랐다.

무엇보다 너무 많이 먹는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배불리 먹은 덕분인지  근처 숙소로 돌아오는 늦은 밤길이   춥게 느껴졌다.


다음  아침 일찍, 우리는 할슈타트여행을 떠났다.

점심 메뉴를 고를 때쯤 또다시 나의 검색 실력이 필요했다.

외삼촌은 어제 먹었던 그 리소토 맛이 그리운 눈치였다.

그렇게 해서 찾은 근처 이탈리안 식당은 음식이 못내 아쉬웠다.

그곳은 도리어 어젯밤 로'스테리아에 대한 향수를 새삼 일깨웠다.


늦은 저녁 다시 잘츠부르크로 돌아왔을 때, 

일행 모두가 저녁 식사를 한 장소로, 로'스테리아를 외쳤!


로'스테리아에는 역시 대기하는 사람들이 많았.

어제 보았던  점원이 역시 빠르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달라진  있다면  점원이 먼저 우리 일행을 알아보았다는 것이다.

그는 여느 유럽인들처럼 차가운 인상에 쉽게 웃지 않는 얼굴이지만, 눈빛행동만큼은 친절했다.

그는 프로처럼 자기가 해야 할 일과 역할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듯했다.  


외삼촌은 예상대로 풍기 리소토를 주문했다.

우린 어제와 비슷한 듯 다르게 여러 메뉴를 주문했다.

모든 음식을 남김없이 먹어 운 후에야 우리는 자리를 일어났다.

모두의 얼굴이, 특히 외삼촌의 표정이 상당히 만족스러워 보였다.

소울푸드의 짙은 맛이 채워주는 기쁨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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