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
엄마가 보이스 피싱을 당할 뻔했다.
엄마는 모르는 번호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음에도, “엄마, 나야.”라는 한마디에 의심 없이 나를 떠올렸다.
핸드폰이 고장 났다는 문자도 단번에 믿었다. 내 핸드폰이 고장 났으니, 나에게 전화 걸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엄마의 개인정보가 필요하다는 요청에도 주인의 말을 잘 따르는 온순한 양처럼… 하나씩 차근차근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마지막 절차로 주민등록증 사진까지 정성껏 찍어 전송을 마쳤다.
무언가에 홀린 듯 빨려 들어가고 있을 때… 한 순간 이성의 날카로운 빛이 엄마의 뇌리를 스쳐갔다.
우리 딸 잘 있는지, 사위에게 전화 한 번 걸어보자는 생각이 든 것이다.
보이스 피싱의 마지막 단계를 한 걸음 앞두고 엄마는 사위와 통화를 했고,
모든 것이 거짓이고 사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경찰에 신고하고, 카드사와 은행에 모두 연락을 돌리고, 핸드폰을 초기화시키고, 주민등록증을 새로 발급받고……
빠르고 분주하게 문제를 처리해 나갔다.
나는 무척 찜찜하고 못마땅한 투로, 의심조차 하지 않은 엄마의 무비판적 사고에 잔뜩 화가 나 있었다.
그런데 복잡한 과정이 지나가고,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약간의 안정을 취하고 나니,
조금씩 생겨난 마음의 여유를 통해 새로운 사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엄마의 눈먼 사랑’이었다.
엄마에게 내 딸이라는 믿음은, 그녀의 모든 것을 열어주는 열쇠가 되었던 것이다.
‘눈먼’ 행동은 사회학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 위험한 현상으로 분류된다.
그것이 누군가에게 위협이 되거나, 누군가를 상처 받기 쉬운 상태로 만들어 놓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눈먼 행위가 사랑이고, 자발적이고, 이타적인 것이라면…… 그것을 분류할 때는 조금 더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가장 약한 것에서 가장 강한 것이 나오는 건 무엇일까요.”
당신에게 이런 수수께끼를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할까?
나는 ‘엄마’라고 대답할 것이다.
물론 요즘 엄마들은 예전과 다르게 세련되고 똑똑해졌다.
자기 자신을 돌볼 줄 알고, 자식을 위해서라도 자신의 행복과 안녕을 먼저 챙길 줄 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 안에서 엄마와 자식의 관계는 가깝고 끈끈하며 복잡하게 얽혀있다.
세상의 부모들을 강하게 만들어 주면서 동시에 가장 취약하게 만드는 것 역시, ‘자식/ 자식사랑’ 일 것이다.
40킬로그램 겨우 넘는 작은 체구에, 남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조용하고 온순한 성격을 가진, 우리 엄마.
누가 보아도 보호받아야 할 것 같은 그런 엄마에게서 가장 강한 것을 찾는다면 무엇일까.
엄마의 눈먼 사랑, 바보 같은 사랑 아닐까….
그 사랑을 떠올리며 ‘찐-사랑’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사랑한다는 말은, 연인 사이 낭만과 달콤함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더 많이 사용되지만,
우리가 정말 사랑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
자기의 유익을 기꺼이 포기하면서,
그 사랑이 자기 비움과 헌신을 통과했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참 사랑의 가치를, 찐사랑의 뜨거움을 경험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