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감고래 May 10. 2022

cross the street

길을 건너가다

길 위에 선다는 건...... 어떤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떼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가끔은 가던 길을 멈추고, 길을 건너가야 할 때가 있다.

길을 잘못 들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일까?

아니면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인 걸까? 

아니면 가려던 목적지가 도중에 바뀐 것일까? 


만약 인간에게 운명처럼 정해진 반드시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있다면, 그곳은 어떤 곳일까? 
숨어있던 자아가 모습을 드러내고 자기를 실현하는 곳일까...
아니면 인간은 누구나 내가 누구인지를 찾아 알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해 끝없이 방황하는 존재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여전히 길 위를 걷고 있는 내 심장이 뛰고 있다는 사실이다.




칼 로저스(Carl Rogers, 1902-1987)는 뉴욕 콜럼비아 대학 교육대학원에서 심리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그가 처음 선택했던 꿈은 농업이었다. 시카고 외곽 시골에서 태어나 신앙심 깊은 부모 밑에서 성장했던 로저스는 내성적인 성격 탓인지 아니면 신실한 청교도의 금욕적 생활 태도 때문인지 주위에 친구가 많지 않았다. 무던한 삶을 살아오던 그가 큰 전환점을 맞이한 것은 미국의 기독교 학생 대표로 중국에서 열리는 국제 프로그램에 참석한 것이 계기였다. 로저스가 중국에서 만난, 각국을 대표하는 여러 기독교 청년들은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 속에서 로저스 자신과는 다른 모양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었다. 이것은 그에게 무척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깊은 깨달음을 얻은 로저스는 그 후 '목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뉴욕에 있는 신학교에 입학한다.


로저스가 선택한 뉴욕 유니온 신학교(Union theological seminary)는 그가 가정에서 배우고 자란, 전통적이며 보수적인 성격의 신학교가 아니었다. 이 선택으로 로저스는 부모와 결별을 하게 된다. 극심한 위장 장애를 앓을 만큼 그에게도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로저스가 새로운 모험을 감행한 것은, 자신의 인생이 자기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가치를 따라 조형되지 않고, 오로지 자기 내면에 존재하는 씨앗이 있는 그대로 꽃 피우고 열매 맺길 바라는 강렬한 소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로저스의 경험은, 향후 그가 펼치게 될 <내담자 중심 상담 이론>의 기초를 놓았다. 그가 당시 심리학의 굵직한 기둥이던 정신분석학이나 행동주의 심리학의 계보를 잇지 않고 자기만의 철학을 펼쳐갈 수 있었던 힘은, 그가 자신의 이론을 몸소 삶으로 살아낸 '진정성(authentic)'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던 까닭이다.


그러나 로저스의 꿈은 다시 한번 전환을 맞는다.

그는 목사가 아닌 '상담가'의 길을 걷기로 또 한 번의 선택을 한다. 자신의 내면의 갈등을 해결하고 자기를 실현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는 뉴욕 유니온 신학교와 '길(street)'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학교, 콜럼비아 대학으로 학적을 옮긴다.


                   "로저스는 다시 한번 자기만의 목적지를 향해 길을 건너갔다(cross the street)."


누군가에게 길을 건너는 것은 신호등이 바뀌면 길 위에 몸을 싣는 습관처럼 익숙한 행동인지 모른다.

그러나 로저스에게 있어서 길을 건너가는 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새로운 목적지로 정향(定向) 하기 위해 잔뜩 힘을 모으고 생각과 감정을 버티어내야 하는 의지적인 싸움의 과정이었다. 로저스는 자신의 부모로부터, 자신이 자라온 종교적 배경으로부터, 자신의 진로는 물론, 심리학의 두 기둥에서조차 떨어져 나오는 분리와 이별의 아픔을 여러 번 경험해야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모든 도전이 그가 단지 허공을 향해 몸부림친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길을 찾아서 자기를 실현하고자 했던, 분명한 목적지를 향한 일관된 과정이었다.




자기만의 목적지를 향해 걷는 길은 아무리 험하다 해도 심장이 뛰고 두근거리게 한다. 이 길의 지도를 가지려면 자신의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깊은 곳에 있는 진정한 나를 밖으로 끌어올려 햇볕에 말리고 드러낼 때야 비로소 내면의 빈자리를 가짜가 아닌 '참-나(authentic self)'로 채우는 자유와 행복을 맛보게 되는 까닭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