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느 선에 서 있는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연일 다양한 관점으로 회자되고 있다. 그의 대표적 닉네임 봉테일을 언급하며, 영화에 숨어있는 디테일한 복선과 다양한 형식의 촬영기법, 소품등에서 조차 의도한 숨은 의미들은 영화를 다시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며, 입에서 입으로 퍼져간다.
하지만 너무나 불편한 현실의 내면을 보며주며 영화관람이후의 찝찝함이 전작인 설국열차의 후폭풍처럼 다가와 보는 것 자체를 꺼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디지털세대가 도래하면서 가장 큰 변화는 언어의 파괴이다. 도무지 알아듣고 이해할 수 없는 언어들이 젊은 세대들에게 통용되면서 정말 '말모이'를 다시 해야할 정도이다. 이것도 문화다양성으로 이해를 하고 수용하며, 서로 존중해야할지는 별개의 관점일 수 있으나, 기성세대들에게는 역시나 불편한 현실일 수 있다.
이러한 젊은 이들과 소통을 위해 소위 '인싸'를 자처하며,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연구하는 마음이 젊은 분들도 많이 보인다. '인싸'는 인사이더의 약어로 관계중심의 삶을 택하며, 조금의 불편함을 관계를 위해 포기하고, 분위기에 잘 적응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한다. 거기에 분위기를 주도해가는 이들을 '핵인싸'라하여 그 안에 속하기 위한 노력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한편, 가장 뜨거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페이스북의 경우 최근 많은 이들이 이탈하고 있다.
소위 관태기(인간관계+권태기)를 느끼는 많은 이들의 행보이다. 이 상황들에 연장하여, 대학생들과 직장인들은 자발적 '아싸(아웃사이더의 약어)'를 택하며, 스스로를 즐기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많은 이들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그들의 방식대로 '인싸'와 '아싸'로 살아가고 있다. 영화'기생충'에서는 수직적으로 넘지말아야할 선을 꾸준히 강조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선을 넘기위한 노력을 하고 살아간다.
어찌보면 조직과 관계가 때로는 불편함을 야기하고, 그들만의 리그가 만들어져 늘 개인에게 선택의 짐을 지우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과감히 그것을 이탈할 수 있는 용기는 자기것이 분명하거나 목표가 명확할 때 가능한 일이다.
'지금 나는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어떤 꿈을 꾸고 사는가? 무엇을 하면 행복한가?'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해야할 필요가 있다. 고령화사회로 이미 접어들면서 이것은 비단 젊은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어떤 선택으로 어떤 부류에 속할지의 선택 자체가 사실 중요하지는 않다. 그것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존중하고 가 줄 수 있을지가 사회의 성장과 수준일 수 있겠다.
김해는 지금 어느 정도의 수준에 와있을까? 아직은 많은 변화의 과정을 격고 있는 상황이다. 외부의 유입이 많은 빠른 도시의 팽창과 성장으로 인해 선주민들과의 문화적, 의식적 평준화가 몸살을 격고 있는듯하다.
각자의 선을 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과 과감히 선을 넘고 있는 이들과의 갈등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이 과정들이 잘 지나고 서로 존중되어져서 '함께' 잘 살수 있는 문화도시 김해를 꿈꿔본다. 조금은 느리더라도 건강한 방향을 위한 노력들이 각지에서 진행되고 있으니 노력하는 이들이 포기하지 않아준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20190612자 김해뉴스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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