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추위 앞에 인류애는 없었다. 비단 그가 아닐지라도

2011.01 대한민국 광주광역시

by 이원재

광주로 향하는 야간열차가 정읍을 지날 무렵, 자연스레 눈이 감기게 되었다. 꿈이었나, 아마 꿈이었을 것이다. 열차는 이미 광주역에 도착한 지 오래였고, 짐을 다 챙기고 나왔지만 문득 신발을 두고 내렸다는 게 생각나 다시 열차에 올라 신발을 챙겨 나왔다.


별안간 가족들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여행 중인 나와 달리 가족들은 본가가 있는 경기도에 있음이 분명한데 새벽에 광주에까지 와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가족들을 찾아 광주역 이곳저곳을 쏘다녔고 꿈에서 깨보니 나는 광주역 대합실에 멀뚱하니 서있었다. 꿈도, 그렇다고 현실도 아닌 그 어딘가. 과연 내가 듣고 이끌렸던 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오전 2시 44분, 버스 첫차가 다니고 해가 뜨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남은 시각.


나와 처지가 비슷한 여행자들이 몇 보이기에 안심이 되었다. 직접적인 대화는 하지 않더라도 나와 같이 동이 트기를 기다려 새로운 여행지로 향할 거라는 공통점에 내적 친밀감이 생기는 이들. 일주일동안 무제한으로 기차를 탈 수 있는 승차권을 들고 전국을 여행하는 내일로 여행자에게 기차역 노숙은 적어도 한 번은 겪게 될 일이지만, 2011년의 겨울은 유난히도 매섭기만 했다.



대합실에는 대형 난방기가 몇 있었다. 하지만 넓기만 한 대합실을 따뜻함으로 메우기엔 역부족이었고, 추위로 인해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 속에서 나는 난방기 앞에 모여 있는 노숙자들에게로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살면서 이들을 보면 피하기에 바빴지 이토록 가까이 다가간 적이 있었나, 난방기의 바람세기가 약한 탓인지 나는 이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밖에 없었고, 그 중 한 명에게서 날카로운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어디 조그만 놈이 어른들 계시는데 막고 지랄이야?”


추위 앞에 인류애는 없었다. 비단 노숙자가 아니더라도 본디 인간은 자기 밥그릇을 사수하지 않는 이상, 타인에 대한 관용은 없다는 걸 현재의 나는 안다. 하지만 중학생이었던 당시의 나에게는 그저 공포였고 이들과 멀어지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저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못해도 추운 겨울에 공용 난방기를 목숨처럼 여기는 삶은 살지 말아야지 하면서.



다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기차역 디지털시계는 오전 6시가 지났음을 알리고 있었다. 동은 아직 트지 않아 칠흑과 같지만 버스는 하나 둘 다니기 시작할 즈음. 편의점에 들어가 1600원 짜리 컵라면 우동을 먹을까 말까 하며 10분을 고민하다 겨우 계산대에 가져다 놓는 여행이었지만, 이마저도 나는 배가 부른 놈이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 값어치 하는 우동 앞에서 손을 덜덜 떨며 만찬이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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