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나를 믿는 게 좋아

2012.07 대한민국 강원도 동해시

by 이원재

동대구에서 출발한 야간열차를 타고 동해역에 내려 정선으로 가던 길, 하루에 두 번밖에 없는 임계행 시내버스에 대한 정보는 모든 게 완벽했다. 버스를 타는 곳, 버스가 들어오는 시각, 심지어 요금까지도. 기차가 지연되어 조금 늦게 도착하긴 했지만, 시간적인 여유는 충분했다.


“임계 가는 버스 방금 지나갔는데……. 타려면 택시타고 따라잡아야 해”


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서있던 나에게 한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반나절동안 컴퓨터를 붙잡고 앉아 찾아댔던 정보들에 오류가 있었다는 사실보다도, 당장 정선에 못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허탈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현재와는 달리 2012년에는 전국의 모든 시내버스 노선의 도착 알림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다.


정말이지 택시라도 타야하는 것인가, 하던 찰나에 내가 보게 된 건, 그 남자와 건너편에 있던 택시기사 사이에 오가는 암묵적인 신호였다. 아, 이 사람들 선동과 날조로 승부해 기어이 나를 택시 뒷좌석에 인도하려는 작정이었구나. 동해시에서 정선 임계면까지는 40km 정도 되는 먼 거리인데다, 백두대간을 넘는 꽤나 험난한 길이라 꼬리 없는 꼬리잡기를 하기엔 최적의 구간이지 않을까 싶었다. 버스와의 격차가 많이 나 한참은 더 가야할 것 같다는 말이 거짓임을 이미 알아버리겠지만, 그렇다고 마땅히 내릴 곳도 없는. 택시의 목적지는 어차피 정해져 있었을 거고, 내가 그에게 건네야 할 금액도 정해져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금액의 일부는, 못해도 3할은 내게 처음 말을 건넨 남자의 뒷주머니에 꽂히지 않았을까. 10분이 더 지나자 버스는 태연히 제 모습을 드러냈고, 나는 2천원이 약간 넘는 값으로 정선까지 올 수 있었다.


사기를 당하지 않았다는 안도감보다는, 중학생을 상대로 이를 행하려 한, 사리분별에 능하고 사려 깊은 이들에 대한 괘씸함이 남았다. 여행하면서 처음으로 만난, 나를 속이려고 했던 사람. 인간에 대한 신뢰나,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믿음은 이미 중학생에게조차도 남아있지는 않았지만, 국내도 마냥 쉽기만 한 여행지는 아니겠다는 사실에 눈을 더욱 크게 뜨게 되었다.


때때론 그들이 아직도 그 시간 그 자리에서 나와 같은, 정선으로 가는 이들로 하여금 똑같은 레퍼토리를 건네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이들 말을 믿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하고. 물론 현재에 와서는 굳이 이들의 말이 아닌 다른 믿을 게 생겨 이들이 설 자리를 잃었겠지만, 무엇보다 정선 가는 버스는 더 이상 동해시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들 또한 더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리라, 생각해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1 추위 앞에 인류애는 없었다. 비단 그가 아닐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