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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악치료사 이원지 Jun 22. 2023

첫인상 이야기.

_그의 첫,현, 래來인상에 대하여.


2009년. 뉴질랜드. 여름이었다.

나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 아름다운 타지에서 쉽지 않은 날들을 보내고 있던 터였다.

뉴질랜드의 한 어학원이자 교회.

키가 크고 덩치 좋은 남자 청년들 4-5명 정도가 나와 무리 앞에서 짧은 소개를 했다.

저 뒤에서 이들을 흘끗 바라보는데, 맨 왼쪽에 서있는 그가 눈에 들어왔다.

일단 키가 컸고, 어깨도 꽤 두꺼워 보였다. 피부도 거뭇거뭇하고 인상이 좋았다.

연노랑 반팔 카라티에 청바지, 운동화 차림이었다.


초면에 나혼자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이 실례인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꽤나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터라, 무언가를 털어놓으면 다 들어줄 것만 같은 그의 표정과 미소가 나홀로 반가웠다.

이러한 마음을 첫 눈에 블라블라. 라고들 표현하는건가. 그 문장에 나를 가두고 싶지는 않으나.

뭐 그렇게 큰 섬광이 번쩍한 것은 아니었고, 편안하고 부드러울 것만 같은 사람. 저 사람 앞에 가면 나의 무언가를 다 드러내도 모조리 이해해줄것만 같은 뭐 그런 말도 안되는 첫 느낌. 처음부터 디테일이 꽤나 디테일한.


자, 첫인상이 가뿐히 가볍게 통과되었으니 이제 슬슬 지켜보기 시작한다.

첫번째 인상에 이어 두번째 인상도 있는 법이니 그건 바로 그의 청소하는 모습. (그때 어학원에는 수업 후 청소당번이 돌아가며 청소하는 시간이 있었다.)

우와. 무슨 청소를 저렇게 열심히 하지? 왼쪽 팔뚝에 mp3를 달고 이어폰을 꽂고 청소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각이 콱 잡혀서는 아주 성실한 청년이지 싶다.


세번째 인상은 그가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 스물다섯이었던 나는 어느정도 남자에 대한 '관'이 잡혀져 있었는데 그건 '나쁜 남자가 아닌 남자'였다. 다시 말해 착한 남자. 그 당시 유행했던 단어였던가, 나쁜 남자는 나에 대한 연애 때의 사랑 감정이 휘발되면 언젠가 본색이 드러날 것이라는 나름의 이유 있는 이유에서였다. 그가 속해있던 반에 나와 동갑내기 친구가 한명 있었는데, 그 친구의 힘듦을 위로해주는 장면을 보아버렸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나홀로의 상상 속 따스함과 꼭 같은 따스함이 깃든 말투와 눈빛이었다. 그렇구나. 여자친구에게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친절한 것을 보니 이 온기는 그의 성품인가보다.


이제 그의 네번째 인상을 보기 전에 나를 본다. 아이고, 그저 폭 담궈져 버렸구나.

이러저러하고 저러이러하며 눈치채지 못하도록 슬금슬금 하였더니 으이그. 그도 내게 마음이 있구나.



 한국에 돌아와 그의 엄마를 처음 만난 자리.

기찻길 옆 어느 밤거리에서 홍천의 엄마는 내게 말했다.

"가난한 목사 아들이지만, 다른건 몰라도 한결할거야."


그 때의 홍천이 엄마, 지금 나의 어머님의 말투, 미소, 온도, 분위기 모두 잊을 수가 없다. 그 한마디는 내게 정말 커다란 선물이었다. 그리고 그 문장은 현재까지 어겨진 적이 없다.

이 사람은 이럴거야라고 생각했던 홍천이는 신기하리만큼 그것들을 꼭 맞게 가지고 있었고, 지금 내가 알고 있는 홍천이는 그 때의 홍천이보다 더 꽉찬 모습으로 곁에 있다. 다시 말해, 애초부터 나의 생각보다 더 괜찮은 남자였다는 뜻.


첫인상에서부터 현인상까지 한결해주는 홍천이.

일상의 투닥거림은 분명 존재하나 나는 그를 나의 깊은 곳에서부터 크게 신뢰하고 좋아한다.

시간의 흐름에 한결함이 무디어지지 않기를.

첫인상과 현인상과 래(來)인상이 크게 다르지 않기를 슴슴히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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