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사색] 2018.12.18 주사-청풍쌤
건강검진을 하면 함께 나오는 신체검사서가 필요해서 병원을 찾았다. 9시를 겨우 넘긴 시간이라 사람이 적었다. 회사를 다닐 땐 검사 받으라고 할때만 받아서 몰랐는데 일반검진을 받으려니 4만원의 검진비용이 발생했다. 이렇게 비싼 검사를 돈 한푼을 내지 않고 받았단 사실에 한번 놀랐다.
혈압을 재려고 의자에 앉았다. 입고 갔던 외투를 벗어 가지런히 접어 한손에 들었다. 별거 아닌 혈압기 앞에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흡흡 후~"
눈을 감고 배에 신경을 쓰면서 복식호흡을 수회 했다. 체질상 혈압은 아무 이상이 없을 것을 자신하면서도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며 심호흡을 했다. 혈압기 앞에 앉아 팔을 쑥 집어 넣었다. 여러 번 해봤지만 옆에 쓰여있는 설명을 자세히 읽었다. 팔꿈치가 바닥에 닿게 팔을 넣고 힘을 빼고 움직이지 마시오. 엄마의 말을 들은 듯 움직이지 않으려 애를 썼다. 측정을 하는 동안 말을 하지 마시오. 말할 사람이 없지만 닫고 있던 입을 더욱 꼭 다물었다. 점점 올라가던 수치가 잠시 멈추는 것 같더니 빠르게 내려갔다. 팔을 죄고 있던 공기주머니의 바람도 빠르게 빠졌다. 이미 예상했던 보통 수준의 혈압이다. 이미 알고 있던 나의 건강상태를 확인했다.
잠시 앉아있으려니 임상병리학과에서 찾는다. 소변을 받아오란다. 아침에 나올 때 혹시나 했는데 이미 샤워하면서 온몸을 정리한 상태라 부담이 컸다. 많지 않았지만 이만하면 적당할 만큼 담아 제출했다. 내 이름을 불렀다.
"여기 앉으세요."
"의자 당겨 가까이 앉으세요."
다리가 길어 의자를 당겨 앉으면 불편해서 살짝 당겨 앉았다.
"더 당겨 앉으세요."
부담스러울 정도로 확 당겨 앉았다. 팔을 걷고 앞으로 내밀었다. 겁이 났다. 얼마만에 나는 겁이었던가. 앞에서 주사기의 위생껍질을 벗기고 있는 담당자는 즐기는 듯 보였다. 아니 무신경하게 필기구 포장지를 벗기듯 벗기고 있었다. 왜 이렇게 두려운걸까? 작은 주사바늘일 뿐인데.
두렵다. 피하고 싶다. 도망치고 싶었다. 주사 바늘 하나에 이렇게 많은 생각이 들 줄이야. 주사바늘을 내게로 향하면서 가까이 오고 있다.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렸다. 아직 주사 맞는 것은 두려운가보다. 0.01초 정도의 시간이었을까? 고개를 돌리자마자 바늘이 얇은 살갗을 뚫고 들어왔다. 모기 주둥이처럼 나의 소중한 피를 쭉쭉 빨아올렸다. 내 소중한 피다. 아시아 인의 1%에 해당하는 RH ㅡ 마이너스이다. 다행히 능숙한 솜씨 덕분에 짧은 고통으로 끝났다.
"잠깐 누르고 있으세요."
"5분 정도만 누르고 있으시면 됩니다."
주사바늘을 찌를 땐 그렇게 차가워 보이던 간호사가 이렇게 따뜻한 말을 하다니. 순간 등 뒤에 날개가 보이는 듯 했다. 앞에선 아무런 표정과 행동의 변화가 없었는데 악마와 천사를 둘 다 보았다.
이후 시력, 청력, 키, 몸무게, 엑스레이를 마치고 병원을 나왔다. 주사를 맞기 전에는 시간이 여유로웠는데 피를 뽑고 나니 아무 생각이 없다. 역치의 효과다. 피를 뽑기 전에는 상황별 판단이 가능했다. 피를 뽑은 큰 고통의 경험은 이후 일어나는 별거 아닌 일들에 대해 무시하게 만들었다.
많은 경험을 하며 커왔다 생각했지만 주사 바늘이란 원초적인 공포 앞에선 한없이 작아지는 어린 날의 나를 만났다.
나는 아직 소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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