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썬마마 Feb 24. 2023

아이는 맥시멀리스트일 수도 있지

언젠간 독립해서 따로 살겠지 뭐...

기본적으로 나는 뭐가 많으면 불편한 사람이다.

맥시멀리스트인 친정엄마는 내가 자취할 때부터 항상  바리바리 갖고 와서  방과 냉장고를 꽉꽉 채워주셨다.

심지어 자취방에 공간이 비어있으면 기필코 가구를 사다가 채워주고 가셔야 속이 풀리시는 분이었다.

나는  꽉 찬 공간과 냉장고를 보고 있으면마음이 답답해졌다.


지금도 냉장고가 꽉 차있으면 음식을 상하기 전에 빨리 먹어야   같고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저기 있을 거라고 생각되어 괜히 찝찝하다.


"가져가면  먹게 돼있어." 

친정엄마는 내가 결혼해서 내 가정을 꾸린 지금도 매번 친정방문 때마다 아이스박스를 3개씩 꽉꽉 채워서 보내주신다.

감사하긴 하지만  냉장고를 비울 때까지 내가 갑자기 먹고 싶은 음식은 못 먹고 냉장고 파먹기만 하게 된다.

난 어릴 때부터 미니멀리즘을 꿈꾸는 취향이었지만, 친정 엄마는 그걸 이해하지 못하셨고, 나의 취향은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미니멀리즘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 나는 미니멀리즘은 좋은 것, 맥시멀리스트는 안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무의식 중으로 하게 되었다.


출처 : pxhere


요즘 내가 시간   즐겨보는 콘텐츠는 미니멀리즘과 살림에 관한 것들이다.

처음에는 둘 다 비슷한 건 줄 알고 구분 없이 시청했는데, (대부분 살림하는 이야기)

보면 볼수록 미니멀리즘과 살림을 잘하는 것은 다른 종류의 얘기라는 걸 깨달았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살림을 잘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물건이 많은 맥시멀리스트에 가깝다.


생각해 보면 집에 들어갔을 때, 참 예쁘고 따뜻하게 살림 잘한다고 느꼈던 지인집들도 정말 물건이 많았었다.

다양한 조리도구때에 맞춘 식기류각종 패브릭아이의 원목장난감들.. 


그렇게 물건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의 삶이 미니멀해 보이는 것은,

 사람의 취향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릇이 많아도한 가지 취향으로 통일감이 있다.

패브릭이 많아도 지저분해 보이지 않는 것은, 인테리어 센스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패브릭을 관리할  있는 성실함도...) 


최근에 옷장정리를 하다 보니  옷의 80프로아이 옷의 90프로는 친정 엄마가 사준 것임을 알게 됐다.

  취향도 없던 사람이었다는 걸 문득 깨닫는다.

그리고 그렇게 된 배경에는 쇼핑 자체를 좋아하고, 내 의사는 물어보지 않고 딸의 옷을 사들고 오시던 친정 엄마가 있었다.

(뭐 딱히 취향이 없었으니, 사주신 옷을 군말 없이 입곤 했다.

그런데 남동생은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으니, 결국 자기 옷은 자기가 직접 사 입는 사람이 되더라..)


그나마 기부할만한 옷을 옷캔에 3박스 보내고 나니 취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지금 당장은 옷을 구매할 계획이 없지만,

 옷들을 열심히 입고 나서  옷을 구매할 때는  한 벌 한벌을 신중하게  취향에 맞춰 구매할  같다


써니는 나처럼 취향 없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진 않았다.

이것이 아이에게 미니멀리즘을 강요할  없는 가장  이유

물건을 원하고, 소유하고, 실컷 느껴본 자만이 결국에는 자기 취향과 미적센스를 가지게 된다.


일도 인간관계도 집안일도 미어터지고 부딪치고 얻어맞아봐야,

지금 내가 가지는 단순함의 여백이 감사하고진짜  것들만 골라서 즐길  있게 된다


아이에게는 다양한 것들을 접할 권리가 있다.

다양한 색깔다양한 모양을 접하고, 다양한 물건들을 실컷 만지고 감상하고 감탄하고 놀아야 한다.

 과정이 아이에게는 뇌계발이고 정서발달이다.


 아이는 짧은 순간도 자라고 있다.

너무나 귀한  아이의 순간순간을 엄마가 미니멀리스트를 한다고기회를 빼앗을 수는 없다

내가 좋아하는 저자인 박혜란 님은, 좀 정리 안된 지저분한 집이 아이들의 창의력을 길러준다는 주장까지 하셨다. (그의 자녀들이 모두 창의적인 인재로 자란 거 보면 어느 정도 일리가 있을 수도?)


초등학교 3학년내가 그렇게나 좋아하던 비비인형을 한꺼번에  버린다고 했을 때,

엄마가 진짜 다 버릴 거냐고 하나만 남겨놓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봤던 게 아직도 생각이 난다.

실컷 욕심냈었고소유했었고 실컷 즐겼기에 버리는 게 미련이 없었다.

내가 그랬듯이 아직 어린 내 아기는 아직 한동안 물건을 소유할 시간이 필요하다.

인형집이 없어졌다고 서글프게 우는 아이를 안고(안 가지고 놀길래 내가 버렸다)진심으로 사과했다.

"미안해엄마가 다음에 버릴 때는  써니한테 물어보고 버릴게." 


아이책과 물건은 당분간 늘어나겠지

그건 어쩔  없을  같다.

내가 볼 땐 온갖 쓰레기 같은 것 같은 작품들도 자꾸 늘어나서 머리가 아프지만, 아이는 본인의 작품에 너무 흡족해한다.

그래서 그냥 거실복도에 써니 전용 갤러리를 만들어줬다.


아이방과 거실에도 작품이 더 걸려있다


아이는 아주 만족해하며, 손님들이 올 때마다 방구석 도슨트를 자처한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본인도 시들해지지만, 그렇다고 떼버렸다가는 바로 눈치채고 난리가 난다.)


애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아이를 둘러싼 모든 것이 무채색이 되고 자기 방에서 안 나온다고 하니, 그때까지만 이 너저분을 참으면 되겠지?

그리고 나중에 정말 나중에 아이가 독립해서 나가면남편이랑 정말 작은 집을 가서 살아보고 싶다.

각자 패드 하나와 기내용 여행가방 하나씩만 들고 여행을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그런 삶을  것이다.

남편 방의  박스들도 그때까진 치워져 있기를 소망해 본다.

(그런데 솔직히 힘들 것 같다..

그냥 남편은 수많은 컴퓨터, 게임기, 박스와 같이 집에서 놀고 나만 떠날 수도 있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