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었다 당겼다 마치 요요 같아

끊어지지 않는 요요

by 원지윤

요즘 엄마의 전화가 뜸하다. 많이 바쁜가 보다. 정말 다행이다. 사실 나는 최근 들어 엄마에게는 용건이 없으면 절대 먼저 전화를 걸지 않는다. 예전 같았으면, 아니 작년 이맘때쯤만 되었어도 사소한 감정의 파고에도 득달같이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하소연을 늘어놓았던 나였다. 입으로는 엄마가 싫다면서 나의 감정을 허심탄회하게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이가 엄마였던 나의 모순적인 모습이 싫고 지겨웠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엄마와 감정을 주고받는 대화가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나의 일이, 나의 공간이, 나의 시간이 생기면서부터 인 것 같기도 하고, 나이가 들어서 인 것 같기도 하다. 나의 감정을 말하고 그 감정을 정당화할 수 있는 일들을 구구절절 늘어놓기가 대단히 귀찮아지면서부터 나는 말이 줄었고 엄마에게 전화를 거는 횟수 또한 줄었다. 나는 그렇게 엄마에게 전화를 걸지 않게 되었다.


이제 정말 엄마와 완벽한 타인이 된 걸까. 그렇다고 건강한 모녀 사이는 아닌 것 같다.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오면 받기가 망설여진다. 피하고 싶은 마음이 무의식적으로 먼저 든다. 마음 저편에서 '또 무슨 일인 거야.' 하는 걱정과 짜증이 함께 올라온다. 핸드폰 화면에 '엄마'라는 두 글자를 본 순간부터 내 머리는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엄마의 대화방식은 굉장히 일방적이고 답정너 스타일이기 때문에 듣다 보면 그 피로감이 어마어마하다. 수능문제 풀듯이 한 시간가량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해야 하는 그녀의 서사를 듣고 있어야 한다. 가끔 엄마의 이야기가 지루하거나 듣기 싫어서 다른 생각이 들어 멍 때리면 절대 안 된다. 중간에 치고 들어오는 새끼질문들이 있기 때문에 한시도 긴장을 놓쳐서는 안 된다. 나 또한 그런 대화방식을 닮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소름이 끼치면서 좌절하게 된다. 그렇게 여러 번의 좌절을 겪고 난 결과,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어떤 주제나 소감에 대해서 말할 때도 솔직하기보다는 이 자리에 적합한 말이 무엇인지 검색하기 시작한다. 마치 그것이 나의 마음인 양 덮어쓰기를 해버리는 것이다. 그녀의 대화패턴이 무의식적으로 나에게 그대로 물들어 버린 것을 깨달은 이후부터는 입을 떼기가 굉장히 조심스럽다.


요요의 매듭 끝까지 풀린 채 우리의 사이는 멀어져 있다. 또 언제 당겨 올릴지 모르지만 그 주도권은 엄마에게 있다. 정서적 교감을 이제 내가 아닌 오빠와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엄마가 전화를 걸어서는 생전 묻지도 않던 나의 식사여부와 안부를 물었다. 이상했다. 왜 갑자기 그러냐는 말이 나올 뻔했지만 얼른 삼켜버렸다. 그녀의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걸 지난 37년간 학습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는 본인 스스로가 이야기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빠가 너랑 나랑 전화하는 거 옆에서 보더니 너무하다고 하더라고. 바로 용건만 말하는 게 너무 전화받기 싫을 것 같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대화방식을 바꿔봤어."

"아, 그랬구나."


나는 속으로 '용건만 말하는 게 편한데. 괜히 긴장했네.' 하며 한숨 돌렸다. 밥을 먹었냐는 엄마의 말이 정말 어색했다. 멍 때리고 있는 순간, 갑자기 요요 줄이 당겨진 기분이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엄마도 변하네.' 라며 친밀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이젠 너무도 아는 나이가 되어버려서일까. 이벤트 같은 안부인사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한참 뒤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제주도 비 오니? 집은 물 안 세니?"


요요는 매듭 끝까지 멀어졌다. 역시 우리 사이는 이 정도의 거리가 적당했다. 그리고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