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눈물웅덩이
아침 9시, 엊그제에 이어 어제도, 오늘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는 학교로, 남편은 회사로 떠나고 없는 시간이었다. 나 혼자 남겨진 시간임을 알고 엄마는 전화를 걸었으리라. 엄마의 잦은 전화는 세차장을 함께 운영하는 오빠와 사이가 원활하지 않다는 일종의 구조요청 같은 신호였다. (둘 사이가 원활할 때면 나에게까지 전화를 걸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예전 같았으면 나의 "여보세요?" 소리와 함께 "네 오빠는 왜 그런다니? 엄마는 이해할 수가 없다."로 시작했을 터였다. 그러나 평소 엄마 답지 않게 갑작스러운 나의 안부로 첫마디를 꺼냈다. 나의 안부를 묻는 첫마디에서 오빠와의 사이가 불편해 힘들고 부대끼는 것을 나는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침은 먹었니?"
"네."
"......"
한참 동안 핸드폰을 귀에 대고 침묵을 견뎌야 했다. 항상 침묵을 깨는 건 엄마의 몫이었지만, 이번에는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엄마는 어디가?"
"응. 엄마 집 때문에 서류 뭐 좀 해야 돼서 그거 하러 가는 길에 네 생각나서 전화했네."
"그렇구먼."
"하는 일은 잘 돼 가니?"
엄마는 늘 속이 상하는 이야기보다 희망찬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예전부터 그랬다. 대학입시에서 미끄러진 나는 재수를 해야 했고, 재수해서 들어간 대학교에서 공부는 곧잘 했으나 직업을 정하는 것에 있어서는 오랜 시간 방황을 했다. 20대 초중반, 취업준비생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무한정 백수생활을 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당시 나의 우울증은커녕 진로를 정하지 못한 백수생활에 대한 언급조차 일절 하지 않는 엄마를 보며 나는 내 실패들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하며 열변을 토했더랬다. 그러나 엄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으며 지금은 준비하는 시간이라며 딸의 실패를, 딸의 역경을 인정하지 않았고 나는 그 모습에 더 화가 났고, 엄마 마음에 눈물웅덩이가 보일 때면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고 싶어 안달이 나던 나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였을까. 엄마 마음에 파인 웅덩이에 고인 엄마의 눈물을 피해 가는 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었다. 작년 겨울,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부터 였을까. 엄마를 잃은 엄마의 아픈 마음에 고인 눈물웅덩이에 더이상 참방참방 물장구를 치고 싶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조금이라도 건드려서 파동이 이는 것조차도 마음이 쓰리다. 그저 얼른 해가 나와 눈물웅덩이에 엄마의 눈물들이 마르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