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라는 자리에서 나로 살아가기
“너는 왜 엄마 마음을 그렇게 몰라주니.”
이 말은 내 유년의 배경음악처럼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나는 엄마의 감정을 먼저 읽어야 했고, 엄마의 기분이 좋지 않으면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불안했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지만, 나는 내 마음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다. 거울이 되기보다 엄마의 필터가 되었다. 엄마의 불안과 외로움, 후회와 희망이 내 안에 얽히고설켜 감정의 실타래가 되었다.
엄마는 자주 말했다. “나는 너희 둘만 보고 살았다.” 그 말은 따뜻한 위로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무겁고 날카로운 책임감이 되었다. 나는 나를 위한 선택을 할 때마다 그녀를 배신하는 기분이 들었다. 딸로서의 나는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고, 엄마가 못한 걸 대신 이루고, 엄마의 상처를 달래야만 존재 의미가 생겼다. 나는 ‘나’이기보다 ‘엄마의 딸’로 살아야 했다.
애착이라고 믿었던 그 감정은 사실 집착이었다. 엄마는 내게서 자신을 구원받고 싶어 했고, 나는 그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지웠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나를 사랑한 게 아니라, 사랑받고 싶었던 거구나.’ 나는 그제야 엄마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해가 나를 자유롭게 하지는 않았다.
서로에게 지나치게 가까운 관계는 결국 한 사람이 사라져야만 유지된다. 내가 사라지거나, 엄마가 사라지거나. 하지만 나는 살아남고 싶었다. 이제는 내 감정을 가장 먼저 마주하고 싶었다. 고착된 관계에서 나를 분리해 내는 일은 어쩌면 모진 짓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애착을 가장한 집착의 그늘에서 천천히 벗어나고 있다.
엄마와 나는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 서로를 오해했고, 너무 오래 엉켜 있어서 이제야 풀린다. 여전히 쉽게 흔들리고, 자주 부딪히지만, 더 이상 그녀를 구원하려 하지 않는다. 내 감정을 지키기 위해 엄마를 미워할 자유도, 사랑하지 않을 권리도 나에게는 있다. 그것은 냉정이 아니라, 진짜 사랑으로 가는 길목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용기를 내어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이제 내 인생을 좀 살고 싶어.” 그 말은 칼날 같았고, 엄마는 상처받은 얼굴로 등을 돌렸다. 나는 죄책감에 눌렸지만, 돌아서지 않았다. 사랑이란 결국 거리감이라고, 나는 배웠다. 가까이 있어도 서로를 질식시키는 관계보다, 떨어져 있어도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가 더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을. 그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변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내가 고착된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요즘 나는 엄마와 거리를 두고 있다. 예전처럼 매일 통화하지 않고, 내 일정을 다 공유하지도 않는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엄마도 어쩌면 나 없이도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배워야 했는지 모른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 오랫동안 서로의 존재를 ‘의무’처럼 견뎌온 걸지도. 이제는 서로의 존재를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주하는 순간이 무겁지 않게, 피하지 않아도 되게. 완전한 타인이 되는 길에서, 비로소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