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의 폭력

도움은 늦고, 간섭은 빠르다

by 원지윤

작년 하반기, 나는 하루를 세 번 살았다. 학생으로, 노동자로, 엄마로. 공부를 하면서 일을 하고, 일을 하다가 아이를 챙겼다. 아이를 챙기고 나면 다시 공부가 기다렸다. 시간표는 그럴듯했지만 생활은 엉망이었다. 집은 늘 무너져 있었고, 무너진 집을 보며 마음도 같이 무너졌다. 아이의 끼니는 돌려막기였다. 계란볶음밥, 김치찌개, 된장찌개, 미역국. 차렸다기보다는 떼웠다가 맞는 밥상. 그게 최선이었다. 빨래는 더했다. 개어 넣을 힘이 없어서 빨랫대에서 마른 걸 그대로 꺼내 입혔다. 빨랫대가 옷장이 되는 생활이 오래 갔다.


그때 내가 정말로 필요했던 건, 누군가 내 내 삶을 '정리'해주는 게 아니었다. 거창한 위로도 아니었다. 그냥 손. 아무 말 없이 설거지 몇 개만 해주는 손. 냉장고에 반찬 하나라도 넣어주는 손. '많이 힘들었지. 고생했어.'라고 말해주는 어른 한 사람. 나는 그 손이 그리웠다. 엄마의 손이라면 더 좋았고, 엄마가 아니라면 어쩔 수 없었다. 그만큼 내가 지쳐 있었으니까.


그런데 엄마는 바빴다. 엄마의 바쁨은 엄마의 기쁨이고 경제적 안정을 뜻한다. 오빠와의 트러블이 적을수록 엄마는 바쁘다. 바쁘다는 말은, 엄마가 비교적 평온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엄마의 연락은 확 줄었다.


좋긴 했다. 솔직히. 전화가 뜸하면 내 머리도 덜 아프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는 도움이 조금 그리웠다. 정확히는 도움이라기보다 '기댈 수 있는 어른의 존재'가 그리웠다. 나는 그걸 인정하는 데 오래 걸렸다. 엄마를 싫어한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무너질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 엄마인 게, 내게는 늘 모순이었으니까. 그 시기 엄마는 오지 않았다. 내가 정말 힘들어 엄마를 떠올릴 때 엄마는 늘 바쁘다 쪽에 있었다. 그리고 남는 말은 대부분 비슷했다.


"다 지나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는 거야."


엄마의 그런 말들이 내게는 종종 위로가 아니라, 정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는 기분으로 남았다. 내가 쓰러졌던 날들의 기억은 늘 조용한 방식으로 남는다. 큰 사건이 아니라,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사실로.


방학이 시작되면서 숨이 조금 돌아왔다. 학업과 육아의 리듬이 한 박자 느려지자 집이 아주 조금씩 제자리를 찾았다. 빨랫대에서 옷을 꺼내 입는 날이 줄었고, 아이 밥도 떼운다에서 먹는다 쪽으로 기울었다. 나는 그제야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버티는 게 아니라 사는 쪽으로.


그때 엄마가 말했다.


"엄마, 오빠 해외 여행 가기 전에 휴가 겸 제주 갈까 해. 가서 일주일 정도 있다가 오려고."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마음이 복잡해졌다. 고맙기도 하고, 동시에 긴장도 됐다. 내가 가장 무너져 있을 때 혼자 버텼다는 기억이 남아 있어서인지, 이제야 건네는 손이 반갑기만 하지는 않았다. 엄마의 마음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아직 그 시절에 걸려 있었던 거다.


게다가 그 무렵, 우리 집에는 코코가 들어왔다. 우리가 결정한 일이었다. 성인으로서, 우리 가족으로서 내린 결론이었다. 하지만 개를 싫어하는 엄마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는지 목소리가 굳었다. 기분이 언짢아 보였다. 엄마는 묻는 척하면서 따졌다.


“왜 개가 있는 데, 또 개를 입양한거야?”


질문 같지만, 답이 이미 정해진 질문이었다. ‘왜’라는 말 뒤에 ‘하면 안 됐는데’가 붙어 있는 질문. 엄마는 그런 방식으로 내 삶에 들어온다. 반대의 이유를 묻는 게 아니라, 반대를 통과시키는 절차처럼.


나는 순간적으로 오래된 역할을 꺼낼 뻔했다. 설명하고, 설득하고, 엄마 마음을 달래고, ‘엄마가 납득할 만한 이유’를 만들어내는 역할. 나는 그런 걸 너무 잘한다. 37년차 딸이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그 역할을 시작하지 않기로 했다.


“키워보니까 좋기도 하고, 우리가 잘 생각해서 결정한 거야.”


말은 짧은데 속은 길게 흔들렸다. 죄책감이 먼저 올라오고, 그 뒤에 방어가 따라오고, 아주 작은 안도감이 남았다. 내가 선을 긋고 있다는 감각이 분명히 있었다. 엄마는 선을 싫어한다. 엄마에게 선은 ‘거리’이고, 거리는 ‘배신’이 된다. 딸이 자기 생활권 밖에서 무언가를 결정하는 순간, 엄마는 그걸 “내가 배제된 사건”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엄마가 불편해하는 건 코코 자체만이 아니라, 코코를 ‘엄마 없이’ 결정한 우리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엄마가 일주일을 지내겠다고 했을 때, 나는 내 생활을 먼저 떠올렸다. 엄마가 오면 집의 공기가 바뀐다. 도움이 늘어나는 것과 별개로, 내 하루의 룰이 바뀐다. 말의 방식이 바뀌고, 눈치의 밀도가 올라가고, 내 몸이 먼저 긴장한다. 그래서 나는 이상한 사람이 된다. 엄마가 오면 고마운데 피곤하다. 엄마가 안 오면 편한데 서운하다. 이 타이밍이 늘 어긋나 있다는 감각이, 내게는 폭력처럼 남는다. 내가 쓰러질 때는 조용했고, 내가 숨을 고를 때만 요란했다. 도움은 늦고, 간섭은 빠르다. 그 리듬 속에서 나는 자주 내 리듬을 잃었다.


코코의 밥그릇을 씻다가 생각했다. 내 집의 결정은 내 집의 것이라는 단순한 진실을, 나는 이제 조금씩 연습하고 있다고. 엄마가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살기 위해서. 그리고 오늘도 마음은 복잡하다. 엄마가 온다고 하면, 여전히. 고마움과 피로가 동시에 올라오는 이 마음이, 내가 아직 딸이라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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