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이라는 말에는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여운이 있다. 어딘가 빠져나간 자리, 어떤 것이 빠져버린 자리. 구멍은 완전하지 않음을 드러낸다. 금이 간 듯한 모양, 닫히지 않은 문, 결핍된 존재. 하지만 사진 <구멍 너머 세상>을 마주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그 단어가 품은 다른 결을 느꼈다.
돌과 돌 사이, 작고 깊게 뚫린 틈. 언뜻 보기에 그 구멍은 무언가 깨진 자리 같았다. 그러나 그 구멍 너머로 스며든 빛과 풍경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빛은 그 틈을 타고 안으로 들어오고 바깥세상은 그 구멍을 통해 안으로 고요히 침투해 있었다.
사진의 제목은 <구멍 너머 세상>. 제목은 하나의 해석을 남긴다. 이것은 단순한 틈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열린 하나의 ‘창’이라고. 세상은 때때로 벽처럼 느껴진다. 나와 타인을, 나와 세계를, 나와 나를 가로막는 무언가. 돌처럼 단단하고 무거운 경계. 하지만 그 견고함 속에도 구멍은 있다. 보이지 않는 틈, 작지만 열려 있는 가능성. 그 구멍을 통해 나는 바깥을 보고 바깥의 무언가는 내 안으로 들어온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을 얻게 된다.
구멍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지니고 있는 마음의 형상일지 모른다. 완벽하게 채워지지 않은 감정, 설명되지 않는 불안, 돌이킬 수 없는 상처. 우리는 그 구멍을 숨기려 하고 감추려 하고 때로는 없애버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열매 작가의 그림책 『구멍』과 <구멍 너머 세상>은 말한다. 그 구멍을 없애려 하지 말라고. 대신 그 구멍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라고. 그 구멍은 네가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자리일지도 모른다고.
사진 속 돌담은 마치 나 자신 같았다. 단단한 것 같지만 사실은 허술하고, 완전해 보이지만 틈이 많은 존재. 그 사이에 난 작은 구멍은 내 마음속 공허의 형태와 닮아 있었다. 누군가를 잃은 자리, 말하지 못한 감정, 흘려보낸 시간. 그 결핍의 자리에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생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우리가 막으려는 곳으로 삶은 들어오고 우리가 감추려는 곳에서 빛은 자란다.
구멍은 나를 고립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연결시킨다. 구멍을 통해 나는 바깥을 보았다. 바깥의 나무와 잎사귀, 붉은 지붕과 푸른 하늘을. 그 모든 것을 보게 해 준 건 완벽한 벽이 아니라 불완전한 틈이었다. 내가 약한 존재였기에 나는 세상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상처 입은 존재였기에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구멍을 통해 숨을 쉬고 말을 하고 사랑을 주고받는다. 삶은 여전히 구멍투성이지만 그래서 더 살아있는 것이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구멍은 프레임이 되고 프레임은 시선을 이끈다.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해주는 장치.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열려 있는 것.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흐르고 있는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구멍을 바라본다.
그 너머의 세상은 아직 말이 없지만 천천히 스며든다.
바람처럼, 빛처럼, 그리고 마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