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도 찬란할 테니까

by 원지윤
12.jpg 18시 54분. 어디로가 아닌,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


사진 속 공항, 18시 54분. 많은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걸어간다. 나는 이리저리 흘러가는 군중 속에서 홀로 멈춰 있다. 나의 목적지는 너무도 분명했지만, 정작 마음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어떻게 가야 할까’라는 질문이 유독 무겁게 다가온다.


여행은 단지 공간의 이동만을 뜻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 비행은 내 삶의 다음 장을 여는 일이고,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는지도 모른다. 돌아갈 수 없는 길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 문 앞에서 자꾸만 마음이 흔들렸다. 내게 필요한 건 출국이 아니라, 길을 믿을 수 있는 마음 한 조각이었다.


그때 떠오른 그림책이 있다. 라울 니에토 구리디의 <두 갈래 길>. 이 책은 두 인물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나뉜 길을 동시에 걸어가는 과정을 교차하여 보여준다. 어떤 길은 환하고 아름다우며, 어떤 길은 어둡고 고요하다. 때로는 장애물이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때로는 각자의 길이 교차하며 뜻밖의 마주침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삶의 길은 단 하나가 아니다. 그리고 그 길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그림책은 말한다. 지나온 길들이 결국 우리 인생을 찬란하게 만든다고. 우리 삶은 수없이 갈라지고 흔들리며, 그 모든 갈래 속에서 멈추고 고민하고 다시 나아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여정이라고.


나는 사진 앞에서 묻는다.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익숙하고 빠른 길, 혹은 조용하고 느린 길. 정답을 찾는 것에 몰두했던 지난날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그러나 이제는 길 위에서 내 마음이 머무는 풍경의 무게와 온기를 느끼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오래전, 목적지 없이 걷던 여행이 떠오른다. 지도를 펼치지도 않고 발길 닿는 대로 걸었던 그때, 나는 낯선 골목에서 우연히 햇살이 스며든 책방을 만났고, 이름 모를 동네 아이의 인사에 웃음을 지었다.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경험이었다. 그 기억은 지금도 내 마음 안쪽에 따뜻하게 남아 있다.


누군가는 망설임을 ‘지체’라고 말하겠지만, 나는 그것을 ‘깊이’라고 부르고 싶다. 빠르게 결정하고 이동하는 삶도 있지만, 나처럼 오래 머물러야 마음이 따라붙는 이들도 있다. 서둘러서 무엇을 잃느니, 차라리 조금 더 머무는 쪽을 택하고 싶다.


길을 걷는다는 건 결국 나를 만나는 일이다. 때로는 나조차 알지 못했던 감정들과 마주하고, 때로는 마음 깊은 곳에서 말없이 움직이는 어떤 결을 느끼게 된다. 그 감각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오히려 가장 분명하게 나를 안내한다. 그래서 길은 방향이 아니라, 감각의 총합이란 생각이 든다.


공항의 시간은 흐르고 있다. 목적지를 향해 서둘러야 할 시간. 하지만 나는 아직도 멈춰 있다. 내 안에서 울리는 소리를 듣기 위해. 느리고 어두운 길 속에서조차, 길은 분명히 나에게 속삭인다. “괜찮아, 네 걸음이 곧 너의 길이야.”


그래서 나는 천천히 한 걸음을 뗀다. 두 갈래 길 중 어느 쪽이든, 이제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한다. 다만 그 길 위에서 무엇을 보고, 어떤 숨결로 살아갈지를 나 스스로 결정할 것이다. 언젠가 돌아봤을 때, 이 길 또한 찬란한 흔적으로 남을 테니까.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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