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 끝에는 당신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 길 끝에는 당신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십 년 전 여의도, 봄 햇살이 쏟아지던 날.
당신은 잘 깎아놓은 알밤 같았어요.
단정하고 반들반들했죠.
지금보다 한참 더 마르고, 눈빛은 반짝이고,
말끝마다 쑥스러운 웃음이 달려 있었던 그 시절.
우린 참 싱그러웠어요.
커피 한 잔에 두 시간을 이야기했고,
밤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설레던 스물 여섯.
그땐 사랑이 늘 앞섰고,
우리 앞엔 미래라는 이름의 빈 종이가 있었죠.
그리고 지금,
나는 우리 집 앞 한적한 돌담길 위에 서 있어요.
담벼락 너머로 고목이 우뚝 서 있네요.
바람에 잎이 조금씩 흔들리지만,
뿌리 깊은 나무는 전혀 흔들리지 않아요.
이 나무를 보고 있자니, 당신이 생각나요.
요즘의 당신은, 꼭 수호수 같아요.
말수는 줄었고, 눈빛은 깊어졌고,
마을 어귀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나무처럼,
가족의 중심이 되어주고 있죠.
오늘은 유난히도 그 수호수의 그늘 아래 앉고 싶네요.
말없이 기대어도 아무 말 없이 다 받아주는
그런 당신 곁에 있고 싶어요.
그런 마음이 드는 날, 나는 이런 길을 걷게 되나 봐요.
그래서요,
저 길 끝에는 당신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말을 걸면 다 들어주고,
아무 말 없이 걸어도 함께 걸어줄 사람.
내가 늘 돌아갈 수 있는 사람.
사랑이 꼭 설레야만 사랑은 아니잖아요.
이제 나는 압니다.
당신처럼 조용하고 깊은 사랑이
가장 오래 간다는 걸요.
오늘도 나는 걸어요.
이 길 끝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내 마음속 수호수, 당신을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