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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구간, 한 구간의 성취감

특정 구간의 중간에 멈췄을 때의 아쉬움도 있을 수 있으니까

by 바람이머문자리

덕유산 1박 2일 산행을 하게 되었는데, 산행 공지 상에 후미 10시간으로 공지되었다.

백두 대간 구간 외 거리까지 하면 16.1km였다. 고도표가 뾰족뾰족했고, 이전 기수에서 가장 어려웠던 코스 5개 중에 하나라고 하셨다고 한다.


이번 산행은 후미에서 시작해서, 중간에 선두로 치고 올라가려고 생각하고 시작했다.

할미봉에서 멋진 운해를 감상했는데, 후미와 같이 가다 보니 일출은 살짝 놓쳤다.


믹스커피 얼린 것 두 병은 후미 대원들 힘내라고 주고 가야겠다 싶었는데, 가다 보니 후미 대원들이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후미를 내버려 두고, 선두로 가지 못했다. 그렇게 점심 먹을 때도 후미에 있게 되었다. 이번 점심은 냉면을 챙겨갔는데, 한 통에 가져가서 나눠주기 불편하여, 대원들에게 많이 나눠주지는 못했다. 다음번에 냉면을 가져가면 나눠 먹을 수 있게 가져가야 할 듯했다.


아침 4시 40분에 산행 시작해서, 11시 30분에 서봉에 도착했다. 구름이 좀 있었지만, 너무 멋진 풍경이었다. 덕유산도 절경이라더니, 멋졌다.

다만 후미도 10시간 예상이면, 3시간가량만 가면 끝나야 될 텐데, 아직 좀 많이 남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선두가 월성재를 도착하면서, 삿갓봉이 백두대간인지 아닌지 무전이 오고 갔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던 GPX 파일을 보니, 이번 구간은 월성재에서 황점마을로 내려가는 것으로 나와 있었다. 다만, 이번 기수의 루트는 삿갓재대피소에서 황점마을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선두는 삿갓봉을 들렀다 가겠다고 하면서 무전은 일단락되었다.


중간에 남덕유산이 있는데, 후미 대원들 중에 일부는 남덕유산은 포기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잠시 올라가 경치를 봤다. 같이 갔던 초등학생 대원이 서봉보다 경치가 더 멋있다는 말에 그냥 가기 아쉬웠고, 나는 아직 체력이 괜찮았다. 그래도 남덕유산 300m라는 이정표에 비해서는 긴 오르막이었다. 후미 대원들이 그냥 지나쳤기에 다행이었을 만큼 꽤 힘든 오르막이었다.


그리고 후미는 13시 30분이 넘어서 월성재에 도착했다. 9시간 반을 산행한 상태여서 슬슬 물이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그나마 삿갓재 대피소에서 물을 팔기에, 거기까지만 일단 가면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텐데, 후미의 상태를 보니 물이 부족할 듯싶었다.



이때, 사실 월성재에서 후미에 있던 대원들은 황점마을로 내려갔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러면 좀 일찍 산행을 마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작년에 중탈을 할 때, 초등 대원들이 매우 낙담하며 울었던 기억이 있어서였다.


아이들도 한 구간, 한 구간 참여해서 완주하는 성취가 나름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아서, 오늘도 늦더라도 끝까지 모두 잘 마칠 수 있게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삿갓재 대피소까지 속도를 냈다. 얼른 가서 물을 사서 후미에 물을 좀 보충해 줘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도 이제 슬슬 힘이 들었는데, 배낭에 최후의 보루로 가지고 다니는 몬스터 한 캔을 혼자 원샷하고 삿갓재 대피소로 이동했다. 카페인이 손 끝까지 쫘악 퍼지는 느낌이었다.

삿갓재 대피소에 도착해서 후미에 계신 분들에게 물이 얼마나 부족하냐고 물었다. 지원 대장님 말씀으로는 그렇게 많이 부족하지 않다고 하셔서 2~3리터만 챙겨서 온 길을 다시 돌아갔다. 길이 오르락 내르락이 있어서 많이 가지는 못했고 600m 돌아가서 물과 믹스커피를 길가에 두고 옆에 누워 쉬고 있었다.


한 명, 두 명 오는 대원들에게 물이 부족한지 묻고, 물이 부족한 대원들은 물을 보충하게 해 드렸다. 그리고 힘내시라고 믹스커피 한 모금씩 하고 가실 수 있게 했다. 후미의 마지막 사람까지 다 만난 후에 후미와 함께 다시 삿갓재 대피소로 이동했다. 후미가 삿갓재 대피소에 도착한 시간이 산행한 지 12시간 17분 되는, 오후 5시였다. 그리고 황점마을까지는 아무리 빨리 가도 20시가 될 것 같았다.


삿갓재 대피소의 물 덕분에 힘이 나서 내려가는데, 여기서도 4km가 넘는 거리였다.

게다가 전체 구간이 내리막에 바위 길이어서 쉽지 않았다. 몇몇 대원이 몸 여기저기 아파하며 점점 속도가 느려졌다. 그래서 학생 대원 가방 2개를 더 매고 먼저 내려가기로 생각하고 혼자 달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일도 산행을 해야 하는데, 과연 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이대로 그냥 다 같이 내려가면 너무 늦어질 것 같아서 움직였다.

위 지도에서 빨간색 루트가 뛰어 내려간 구간이다. 전력질주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긴 거리를 느린 속도로 달려갔다. 버스에 가방을 내려두고, 다시 후미 대원들 짐을 좀 받아주려고 올라갔다. 최후미에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아서 아주 뒤처진 분이 계셔서 훨씬 더 멀리 계실 줄 알았는데, 다행히 1km 올라간 지점에서 만날 수 있었다. 가방을 들어드리고, 응원을 해드렸다. 다행히 이 지점부터는 길이 좀 평평해지는 편이어서 무난히 내려올 수 있었다. 후미까지 다 내려온 시점이 19시 40~50분이었다. 후미에 있던 대원들은 14~15시간의 산행을 한 것이다.



돌아와서 10시간으로 공지된 구간이 왜 15시간이 걸렸을까 분석을 해봤지만,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이런 내용으로 글을 남겼더니, 이우백두 21기 총무대장님께서 15시간 산행을 한 만큼 체력은 더 좋으신 거라고 하셨다.


이우백두에서는 백두대간을 45개 구간으로 나누어서 가고 있다.

45개 구간 모두를 완주하는 것의 성취감도 대단하겠지만, 한 구간 한 구간에서 느끼는 성취감도 그에 못지않은 것 같다. 나도 45구간 모두를 하고 싶기는 하지만, 꼭 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한 구간을 시작했다면 끝까지 가야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후미에 있던 17여 명의 대원들은 엄청난 뿌듯함을 느낀 날이었지 않을까 싶다.



나는 동분서주 하느라 16km 구간에서 23km 가까이 산행을 했다. 그래도 다행이 몸이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내일 도 산행을 해야 된다는 마음에 나름 몸을 사리면서 최선을 다했던 듯 하다.


2025. 8. 23 백두대간 8구간(육십령~황점마을) / 난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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