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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는 모르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스타트업을 다니면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대표이사의 마음으로 일하는 법

by 바람이머문자리

대기업은 이렇다. 라면서 써 온 내 글들을 다시 읽어보니, '스타트업 별로예요.'라고 말하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의도가 전혀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스타트업을 경험하면서 어떤 것을 배웠는지 하나하나 정리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썼던 글도 그렇고, 앞으로도 쓰려는 글은 스타트업이 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2019년 5월 스타트업에 Product Owner로 모든 것을 해야 하는 포지션으로 합류하게 되었었다. 그 당시를 회상하면 대략 반년은 너무 신나게 일했다. 너무 신나게 일한 나머지 가족도 내팽개쳤을 정도였다.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을 선택했던 이유도 A to Z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스타트업에 와서 A to Z를 하니까 너무 즐거웠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회사에 얼른 가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6개월 정도가 지나고 나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해외 사업을 개발하는 업무로 합류해서, 해외 사업을 B2B 플랫폼으로 풀어보면 좋을 것 같다고 방향을 정하고 달려온 6개월의 결과물은 처참했다. 이유는 이러했다.


1. 플랫폼을 만들어 본 경험이 없어서, 디테일을 챙기지 못했다.

플랫폼 스타트업이다 보니, 플랫폼으로 하자고 하면 뙇! 하고 플랫폼 하나를 만들어 주는 것으로 착각했었다. 기존의 플랫폼과 별개로 만들어져야 하다 보니, 내가 '서비스 기획자'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나는 전통 산업에서만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최종 개발 결과물은 내가 생각했던 방향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2. 양면 플랫폼, 정상 궤도에 올리기가 어렵다.

플랫폼 레볼루션(Platform Revolution)이라는 책을 보고, 플랫폼 파워가 대단하는 것은 알았다. 그런데 그 대단한 파워를 발휘하는 정상 궤도까지 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양 쪽 모두에 영업, 마케팅을 진행해야 하는데, 제한된 리소스로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무리가 되는 상황을 잘 알지 못했었다.


3. 마케팅, SEO(search engine optimization)까지 내가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해외 영업을 주로 해왔던 터라, 마케팅이나 SEO를 전담으로 진행해본 적은 없었다. 플랫폼이 만들어지고, 마케팅과 SEO는 각 부서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 부분도 내가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책을 보면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효율성 측면에서 그 방향이 나 스스로 맞다고 확신을 갖지 못했다.



그렇게 어려움에 봉착하는 시점에 대표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맡은 사업의 대표라고 생각하고 임해달라. 대표는 모르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이 말씀을 듣고 나서 내가 이 사업을 하는 회사의 대표라고 생각해보았다. 이렇게 처참한 결과물이 나오게 되었다면, 회사가 망했을 것 같다. 모른다고, 어렵다고 안 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대기업에서 직원으로만 일하다가 대표의 마음으로 업무에 임하면서 굉장히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맡았던 프로젝트는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나 스스로는 큰 교훈을 얻었다. 그 이후로 스타트업에서 신사업 관련된 몇몇 업무를 맡았고, 대기업 물 쫙 빼고 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간극은 너무도 크다. 하지만 대기업, 스타트업 모두, 그 안에서 일하는 우리들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배울 것들은 무궁무진하다.

혹자는 대기업을 떠난 것을 후회하지 않냐는 듯한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일말의 후회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대기업에서 일하면서 세상의 변화의 속도에 둔감했었고, 대표이사의 마음으로 일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기업에서 40~50대를 넘기면 다른 곳으로 옮기기 정말 어려워진다. 그렇게 50~60대에 세상에 나오게 된다면, 세상의 변화 속도에 현기증이 날 것이다. 정년퇴직을 하시는 부장님들이 정말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경우도 많이 봤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스타트업에서 3년 반 가량을 지내면서 배운 것들이 많지만, 역설적이게도 배울 수 있었던 이유는 대기업에서의 경험 덕분이었던 것 같다. 대기업에서 일하는 방식을 경험해 본 후에, 스타트업의 업무 방식을 보면 조금 더 넓고, 여유 있게 받아들일 수 있고, 조금 더 깊은 인사이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대기업에서 처음 스타트업으로 인직한 경우, 바로 태세 전환해서 딱 맞춰가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다시 스타트업에 간다면 이번보다는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반면, 아쉽게도 스타트업이 첫 직장인 직원들은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해서 지금 근무하는 스타트업이 세상의 전부라고 착각하고 살 수 있다. 그런 직원들에게 '여기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지금 하는 일이 '힘들다'라는 생각에서 멈추지 말고,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라는 생각으로 임하면 좋을 것 같다. 그러다가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을 때는 다른 길을 고민해보라.


후배들이 진로 상담을 하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이력서를 써서 지원해봐라.'

지원하고 떨어져 보면, 자신에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보인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부족한 점을 파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입사지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 그 부족한 점을 현재 회사에서 채울 수 있다면, 그 업무를 해볼 수 있도록 업무 조정하고, 그 이력을 기반으로 다시 지원한다. 이러기를 반복하면, 반드시 본인이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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