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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이머문자리 Oct 16. 2024

기록하지 않으면 거짓말쟁이가 된다

백두대간 1,2구간, 지리산 종주의 기록

지난 토요일 밤 11시 10분 정도에 집합 장소에 도착해서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버스에 올라탔다.

중산리에서 천왕봉을 올라 벽소령까지, 그리고 다음날 성삼재까지 가는 코스다.

처음으로 1박 2일 산행에 임했다. 다른 때와 달리 우리 가족 중에는 나만 참여하게 되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살짝 외롭기도 했다.


이번 산행이 14, 15차인데, 14차 산행(중산리~벽소령)은 지금까지 중에 가장 힘들었다.


벽소령 대피소에서 선배님들이 지원산행을 오셔서 저녁을 준비해 주신 덕에 따뜻한 저녁밥을 먹을 수 있었다.

선배님들의 헌신과 노고에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싶다.


이번 산행은 많은 거짓말에 속았다. 그래서 그 거짓말들을 돌아보려고 한다.



거짓 1. 천왕봉까지 올라가면 그 이후에는 평지다.  

진짜 천왕봉까지는 힘들었다. 1박 2일이다 보니 평소보다 가방 무게가 더 나가기도 했지만, 여름에 물 가져가던 양을 생각하면 그렇게 많이 무거워진 것도 아니긴 했다. 고도 600M에서 1900M까지 쉬지 않고 오르막이라서 가파르기에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무한의 계단 같은 끝없는 계단은 허벅지를 탈탈 털어버렸다.

그리고 첫날은 오른쪽 무릎이 욱씬거렸는데, 그걸 신경 쓰며 가느라 더 힘들었던 듯하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천왕봉은 천왕봉 표지석에서 사진 찍는 줄이 있을 정도로 사람이 북적였다.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해 사진을 찍었고, 후미를 기다리면서 30여분 기다리고 출발했다.

그런데 평지라던 이후의 길은 오르락 내르락, 짧게 반복하면서 무척이나 지루하고 힘들었다. 벽소령 대피소가 바로 앞에 있을 만큼 걸었다고 생각해도 여전히 0.7km가 남았다는 이정표가 무정하게 느껴졌다.


[정정] 천왕봉을 지나도 힘겨우니, 천왕봉 오를 때 힘을 좀 아껴두어야겠다.


거짓 2. 반야봉은 구간 외인데, 500m니까 가방 벗고 뛰어갔다 오면 된다.

첫째 날 밤 저녁시간에 선배님들이 하신 말씀이다. 나는 어차피 천왕봉에서 봤던 풍경일 텐데 올라갈 필요 없다는 듯이 철벽을 쳤다. 그런데 어쩌다 선두 대열에 있길래 잠깐 올라갔다 오면 되지 않겠나 싶어 반야봉에 오르는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런데 표지판에 '반야봉 0.8Km'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속으로 '입만 열면 거짓말이구만'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미 들어섰으니 어쩔 수 없이 간다고 가는데, 올라가도 모자랄 판에 내리막이 있다. 그리고 좀 지나가니 계단도 30~40개 있다.


내려오시는 분들은 이구동성으로 '다 왔습니다.'라고 하신다. 난 또 속으로 '산에는 거짓말쟁이들만 오나?' 생각했다. 어쨌든 숨을 헐떡이면서 정상에 도착했다. 여기에 더해서 '가방 벗고 뛰어'도 반은 거짓말이다. 나는 가방을 벗어도 뛰어지지 않았다. (물론, 체조대장님은 뛰어가셨다.)


정상의 멋진 풍경을 잠시 보고 내려가는데, 한 부부가 잘 가고 계셨다. 아마도 60대이신 듯한데, 앞서 가라고 양보를 하신다. 나는 그 부부의 속도보다 빠르게 갈 힘이 없었는데 말이다. 잠시 대화를 나눴는데, 20년 전에 지리산을 당일 종주 하셨다고 한다. 이 분들은 반야봉도 가방을 메고 올라가셨다 내려오셔서 나보다 빠른 속도로 가셨다. 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정정] 반야봉은 왕복 2Km 정도로 상당히 가파른 오르막과 계단이 있다. 체력 여유가 있는 분들만 가자.


거짓 3. 삼도봉 전에 300인가 600 계단이 있는데 거기만 넘으면 끝이야.

둘째 날 아침 선배님들이 준비해 주신 아침을 먹고 출발하려는데, '삼도봉 전에 300 계단이 있는데, 거기만 넘으면 끝이야.'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300 계단으로 들었는데, 다른 분은 300인가 600인가 그래라고 들으셨단다. 300 하고 600은 차이가 너무 나는 것 아닌가? ㅎㅎ


그리고 화개재를 지나자 바로 그 계단이 나왔다. 실제 계단수는 551개였다. 300 계단도 거짓말이었어. ㅎㅎ


근데 여기 계단은 진짜 위를 보면서 가면 너무 힘들다. 숨차서 2~3번 쉬어 올라갔다.


그래도 여기만 오르니, 이후 구간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거기만 넘으면 끝이야'라는 말도 거짓말이었다면 정말 배신감 느꼈을지도 모른다.


[정정] 삼도봉 전에 551 계단이 있다. 위를 보지 말고, 계단 몇 개인가 세면서 천천히 올라가자



지나고 나면 추억이다. 그래서 기록해두지 않으면 우리도 똑같이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을까?

기억은 왜곡돼서 좋은 기억이 더 또렷하다. 그러지 않으려면 기록해야 한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특히, 노고단에서 성삼재까지 내려오는 길은 여유가 있는데, 마지막이 여유로웠다고 1박 2일 전체가 여유로웠던 것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


산행 후에 무엇을 느꼈는가 한 번 써보는 것은 좋은 것 같다.


[[산행 기록]]

1일차 (1구간)

2일차 (2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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