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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세우스 Feb 07. 2022

글램핑과의 전쟁

우리 집 꼬마 여행 가이드

 얼마 전에 온 가족이 글램핑을 다녀왔습니다. 저는 사실 캠핑은 물론이고 글램핑도 아하는 편이 아닙니다. 여행은 굉장히 좋아하지만 잠은 꼭 제대로 된 집에서 자야 한다는 고정관념 생기게 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몇 번의 야외취침 뒤 며칠 동안 몸살 가까운 고초를 겪었던 기억저를 본능적으로 생존을 위해 캠핑 부적격자로 만들었죠.


※ 캠핑 : 텐트나 지형을 이용해 일시적으로 하는 야외활동

     글램핑 : Glamorous +camping의 합성어로서 화려한

     캠핑 또는 고급스러운 야영(전혀 고급스럽지 않음)

출처 : 여기어때


 그런 제가 글램핑을 하겠다고 전격적으로 결정하게 된 것은 아이들의 영향이 컸습니다. 아이들에게 언젠가 이렇게 어본 적이 있습니다. "친구들 아빠들 중에서 혹시 부러운 사람이 있니?"

 그때 굳이 그 질문을 제가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말이죠. 곰곰이 생각하던 아이들에게서 돌아온 답은 이랬습니다.


"다른 건 모르겠고 지x네가 캠핑을 많이 가는 건이 부러워요. 우리 집도 캠핑 자주 가면 좋겠어요."

 아이들의 이런 이야기를 들은 뒤 자 입으로 '아빠는 캠핑을 싫어해서 못 가니까 네가 어른이 되면 실컷 가렴~' 이런 식으로 말을 할 아빠가 누가 있을까요.


 

 결국 캠핑을 꼭 가겠노아이들과 약속한 뒤 데드라인 정했습니다. 그리고 시기는 원고 마감 시간처럼 부담스럽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치사하게 아이에게 공을 던졌죠. "네가 인터넷으로 가평 지역 글램핑으로 검색해서 찾아봐. 너무 비싸면 못 가고 또 밥도 먹어야 되니까 맛집도 찾아봐야 해."

 정말 치졸한 어른이지 않습니까? 자기가 가기 싫다고 알아보는 것까지 아이에게 떠미는 어른이라니..

 그런데 저의 이 제안은 의외의 결과를 낳았습니다.


 아이는 제가 떡같이 이야기한 것을 찰떡같이 알아듣고는 

ㅇ 예약 가능 여부 확인

ㅇ 1박당 가격

ㅇ 집에서부터 이동시간

ㅇ 근처 맛집(숙소에서부터 거리)


 이것들을 종합해서 최종 후보 두 군데를 추려서 제 앞에 떡하니 내놓았던 것이죠. 물론 자녀와 함께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이에게 굉장히 긍정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제가 다른 글에서도 언급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모든 걸 아이에게 맡긴 적은 처음이었죠. 아이가 정리해 온 내용에는 딱히 딴지를 걸 만한 내용도 없었습니다. 저와 아내는 얘가 이 정도로 꼼꼼했었나 싶을 정도로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스스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 기회를 더 자주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뿌듯함도 잠시뿐 그날의 가평의 기온이 영하 10도 내외라는 것을 보고 저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고 있었니다. 기까지 왔으니 이젠 빼도 박도 못하고 가야 합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가평 숙소에 도착해서 크인을 하고 짐도 풀었지만 어른도 아이도 나가서 뭘 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바람까지 동반된 강추위는 아이들까지 움츠러들게 했죠.

 결국 밖에서 바비큐는 언감생심이었고 숙소 안에서 요리를 해 먹었습니다.

오늘은 내가 주꾸미 삼겹살 요리사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아이들이 원했던 장작불로 불멍은 할 수 있었다는 거였습니다. 아이들은 신나서 추운 와중에도 장작놀이를 즐겼지만 부실한 어른들은 추위 속에서 덜덜 떨었고 돌아가면서 10분 간격으로 불침번을 서듯 숙소를 들락날락해야만 했죠.

요즘은 초록색 불이 나오는 가루도 팝니다. 세상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위기는 거기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잘 때가 진정한 위기였죠. 양쪽 침대에 아내와 아이들이 나눠서 자고 저는 그 사이의 바닥에 자리를 펴서 누워 잤는데 밤새 열 번도 넘게 깨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머리 쪽에서 밤새 솔솔 불어오는 외풍 때문이었죠. 누가 선풍기를 틀어놓은 줄 알았을 정도니까요.

 바닥은 손이 델 정도로 뜨겁지만 공기는 입김이라도 금세 나올 것 같았습니다. 노천탕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기분이 이럴까요?

남의 돈 먹기가 쉬운 일이 아니여~


 70시간 같았던 7시간을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아침에 일어나 제 몰골을 보니 1박 2일 멤버들의 야외취침 장면을 마냥 웃고 즐기면 안 되었다는 반성이 절로 들었습니다. 누가 내 몸을 발로 밟고 지나갔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아이들은 쌩쌩하더군요. 젊음이 이래서 좋은 건가 싶으면서도 다행이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들은 진짜 재밌었다고 하네요. 별로 한 것도 없었는데 그렇게 이야기해줘서 미안하면서도 고마웠습니다. 그 와중에 또 한 가지 더 얻은 소득이라면 이제 겨울에는 캠핑을 가자고 하지 않겠다고 하네요. 아이들도 춥긴 추웠나 봅니다.



 집으로 돌아오며 좋은 아빠, 좋은 엄마 되기란 역시 쉬운 일이 아님을 새삼 또 한 번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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