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학생들에게 중요한 학사일정이 하나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원서접수가 시작되어서였는데요. 예전의 저였다면 괘념치 않고 지나갔을 행사였겠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제가 1998년 수능시험을 본 이후 26년 만에 시험을 치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수능시험에 도전하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입시에 대해서 정확하게 배우고 싶다는 의지가 있었고
지금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앞으로 할 공부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서죠.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졸업했던 지역에 거주하지 않는 사람이 치르는 수능은 원서접수부터 꽤 번거로운 절차가 필요했습니다.
1. 서류 준비(5가지)
주민등록초본과고등학교 졸업 증명서가 필요한데 이 서류는 주민센터에서 뽑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 여권 사진 두 장과 신분증만 챙기면 됩니다. 응시원서는 교육지원청에 가면 직접 받을 수 있으니까요. 다만 여분의 증명사진이 없던 관계로 사진관에 가서 부랴부랴 새로 출력하느라 애를 좀 먹기는 했습니다.
2. 응시원서 작성
자신이 사는 지역의 교육지원청에 가면 안내하는 입간판과 안내문이 여기저기 붙어있습니다. 알고 보니 오늘이 접수 첫날이더군요. 올라가면 첫 번째 사무실에서 수기로 서류를 쓰게 합니다. 친절하게 안내해 주시는 분도 계시죠. 개인정보를 작성하고 선택과목도 정하는데 저는 탐구영역에서 동아시아사와 세계사를 선택했습니다. 다른 과목은 아직 부담스럽더라고요.
3. 서류접수
1번 방에서 작성한 서류를 2번 방에 계신 담당자께 갖다 드리면 그 내용을 온라인으로 직접 입력해서 수험 접수증을 만들어줍니다. 반대편 화면 모니터로 입력된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도 거치죠. 서명도 무조건 사인이 아닌 정자로 적어야 합니다. 꽤 깐깐한 방식으로 진행한다
4. 수험료 납부
다시 옆자리로 이동하면 수험료를 받는 분이 계십니다. 선택하는 과목수에 따라서 수험료에 차이가 생기는데 저는 4과목이라서 37,000원을 냈습니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제가 시험을 봤던 1998년에는 12,000원이었는데 그 사이에 평가 방식과 더불어 응시료에도 꽤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5. 마무리
모든 절차를 마치고 접수증과 응시료 영수증을 받고 예비소집일, 예비소집장소까지 확인한 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수험표는 예비소집일에 해당 학교에 가야 받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서류를 뽑고 사진을 인화하고 접수까지 하는 과정은 세 시간가량 막상 마치고 돌아오니 얼떨떨합니다.
주위에서도 왜 그러느냐고 하고 할 일이 없느냐고도 하고 교육지원청에서 만난 학폭위 장학사님들마저도 '으응? 수능을? 갑자기? 왜? '라는 표정이셨으니까요. 돈 쓸 데가 그렇게 없으면 나한테 달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응시료인 37,000원으로 할 수 있는 일도 한 번 생각해 봤습니다. 증명사진을 출력하고 왔다 갔다 기회비용까지 따지면 접수일만 해도 10만 원어치는 들어갈 테고 문제집도 사야 하니 갑자기 부담감이 몰려오지만 그래도 이 미약한 시작에 이런 부담감조차 없으면 의미가 없겠죠.
그래도 접수하고 당당하게 "아빠 수능 접수하고 왔다"라고 하니 건강이가 제가 가져온 서류들을 보면서 꽤 흥미롭게 이것저것 찾아봅니다. 시간표도 궁금해하고 과목도 살펴보고 주의사항까지 찾아보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나름의 효과가 있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미리 밑밥을 까는 듯하기는 하지만 올해 성적은 아마 정말 처절하게 바닥을 깔지 않을까 싶습니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10여 년 전에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토익시험을 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고 억지로 본 적이 있는데 255점이 나왔던 적도 있었으니까요. 참고로 토익은 990점이 만점입니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니까 남은 시간 동안 미약한 첫걸음이 너무 미약하게 끝나지는 않도록 시간 나는 대로 공부를 해볼 생각입니다. 그래야 앞으로 입시를 준비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뿐더러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도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