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에서 준 밀카드로 푸짐하게 브런치 거리를 산 저희는 자리를 잡고 각자의 할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급하게 여기저기 쓰느라 배터리가 빨리 닳아버린 휴대폰에 노트북, 워치까지 충전을 하려고 보니 생각지도 않게 콘센트를 점령한 카공족이 됩니다.
아내는 밀카드로 산 브런치가 신기했던 제가 사진을 찍는 모습을 찍고 있군요. 저는 긍정의 에너지를 모으며 글감용 사진을 모으던 중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도 자리를 잡고 어제 올렸던 글을 쓰는 동안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해야 할 일들을 합니다. 제법 분량이 많았던 수학 숙제가 있어서 챙겨 왔는데 이참에 한다고 말이죠.
둘이서 머리를 함께 굴려서 풀어서 그런지 제법 빠르게 마무리합니다. 이런 자투리 시간을 버리지 않으면 확실히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을 할 일은 많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갑자기 아내의 휴대폰이 울립니다.
항공사의 전화였죠. 비행기 수속이 시작되는 오후 7시까지 자신들이 책임을 지겠다는 연락이었습니다. 김포에 있는 호텔을 잡아놨고 거기서 쉴 수 있게 해 놓는다는 말이었죠.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얼른 짐을 챙겨서 버스를 타러 갔습니다.
버스에는 Flight Delay Service라는 문구가 적혀있었죠. 이런 이름의 버스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고급형 버스라서 그런지 내부도 넓었습니다. 항공사를 통해서 대략적인 일정표도 제공받았는데 숙소로 가서 점심을 먹고 쉬다가 저녁까지 먹은 뒤에 다시 공항으로 오는 아주 심플한 일정이었죠.
궁금했던 점이 있는데 비행기를 못 탄 분들은 최소 100여 명은 되었을 텐데 그 버스에는 스무 명 정도만 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나중에 항공사 직원을 통해서 안 사실이지만 연락을 받지 않은 분들도 계셨고 받은 분들 중에서는 식사 중이라고 가지 않겠다고 하신 분도 계셨다고 합니다. 아예 공항 밖으로 나간 분들도 많으셨고요.
공항에서 출발해 김포에 있는 라마다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2명 당 1개의 객실을 제공했는데 방이 넓지는 않았지만 잠시 있다가 가기에는 적절한 크기였죠. 전망도 제법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7층에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나름 오션뷰였으니까요.
이런 걸로 항공사의 실수를 모두 때울 수 없겠지만 제법 신경을 써준 듯해서 화를 조금 더 누그러뜨려봅니다.
점심을 먹고 짐 정리를 좀 한 뒤 각자 할 일을 하면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저와 아내는 일정 변경에 대한 의논도 하고 보상에 대한 부분도 알아봤죠. 그러고는 호텔 바로 옆에 있는 대형 아웃렛도 잠시 구경하고 왔습니다. 비행기 지연출발로 별의별 경험을 다해 본다 싶었죠.
드디어 오후 6시가 되었고 호텔에서 제공하는 저녁식사를 먹으러 갑니다. 반찬이 제법 정갈하고 맛있었습니다. 메추리알 조림, 데리야키 계란말이, 깐풍 새우, 오이김치, 토마토 샐러드, 감자수제비 등 꽤 푸짐했죠.
이때부터 저의 미련한 원주 저녁 세끼 식도락 여정이 시작됩니다.
공항에 도착해서 티켓을 드디어 발권 받습니다. 이제는 공항터미널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죠. 하지만 가만히 앉아있을 수는 없습니다. 여행자 보험에서 보장해 주는 금액은 공항 안에서 쓰는 식음료, 간식비만 해당되기 때문이죠. 그렇게 해서 태어나처음으로 공항 라운지라는 곳으로 가봅니다.
마티나 라운지라는 곳이었는데 값이 그리 저렴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보험사에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범위에 들어가기도 하고 카드 할인이 되길래 결재를 하고 한번 들어가 봅니다.
넓은 공간에 자리를 잡고 무슨 음식이 있는지 살펴봅니다. 저녁을 먹은 지 단 두 시간밖에 되지 않았지만 새로운 메뉴들이 많아서 또 부지런히 담아봅니다. 라면까지 제공하길래 여러모로 신기한 곳이다 싶었습니다. 그곳에서도 한 끼 제대로 배를 채워봅니다. 이때부터는 조금 부담스러워지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비행기를 타면 당연히 기내식을 준다는 사실이었죠.
밤에 타는 비행기라서 뭘 먹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비행기가 궤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서비스 제공이 시작되었습니다.
먹을지 말지 고민 끝에 두 가지 중 하나를 골라서 건강이와 나눠 먹기로 했습니다. 저녁 세끼의 완성이었죠. 쇠고기 덮밥이었는데 밥은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김치는 정말 지금까지 먹어본 적 없는 정말 오묘한 맛이었습니다. 이미 과식을 한 상태였기에 더 들어갈 공간이 없어서 위가 정말 고단했습니다.
그렇게 오후 6시 반부터 11시 반까지 단 다섯 시간 만에
삼시 세끼도 아니고
원주 저녁 세끼가 이렇게 완성이 되었습니다.
원주 새끼 절대 아닙니다. 먹지 않으면 왠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리를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갈비뼈를 다치고 나서 67.8kg까지 체중이 늘었습니다. 힘들게 63.6kg까지 줄였는데 다시 살이 찐다면 오늘의 원주 저녁 세끼가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