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2025학년도 수능시험 성적표가 발표되는 날이어서죠. 저 역시 2025학년도 수학능력시험을 8월에 접수하고 11월 13일에는 예비소집일에 다녀왔으며 11월 14일에는 수능까지 치른 한 사람의 수험생이기에 성적표가 공개되는 이날이 꽤 기다려졌습니다.
아침이 밝자 의외로 긴장감이 엄습해 왔습니다. 치열하게 공부한 학생들과 비교했을 때는 저한테는 소소한 경험 정도로 치부할 수 있다고 여겼는데 막상 뚜껑을 열려고 하니 마음이 그렇지가 않더군요. 노력을 진득하게라도 해놓고 이런다면 이해라도 하겠는데 제 간사한 마음에 놀랍니다. 제가 이 정도인데 수험생들의 마음은 어땠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습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는 9시부터 성적을 확인할 수 있게 되어있는데 정각이 되었음에도 접속이 원활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한꺼번에 접속이 몰려서였겠죠.
저도 잠깐 동안의 기다림을 가진 뒤 차분하게 절차대로 진행해서 개인정보 인증까지 마칩니다.
제 눈앞에 성적통지표가 뜨는 순간 저는 실망감과 아쉬움에 얼굴이 화끈거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바로 생각보다 낮았던 국어 성적 등급 때문이었는데요. 작가라는 타이틀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 수준의 성적을 받아왔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성적표를 보여줬는데 녀석들도 놀라워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성균관대까지 나왔고 작가라고 말하며 매일 글까지 쓰는 사람이 우리 아빠인데 그래도 6등급은 좀 심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든 모양입니다. 물론 제 상상이었지만요.
사실 국어 시험은 단 한 문제도 연습한 적이 없는 상태, 즉 제로베이스에서 치렀으니 잘 나오리라는 기대는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시계를 챙겨가지 않는 바람에 시간관리에 실패했고 마지막 세 문제를 아예 OMR 카드에 마킹하지도 못하는 상황까지도 있었죠.
하지만 이미 떠난 버스를 보며 이런 이야기를 해봐야 비겁한 변명일 뿐입니다. 실전에서 그런 이야기 따위는 옹색한 자기변명 그 이상 그 이하도 되지 않으니까요. 그냥 제 실력이 이 정도임을 겸허히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일인데 이상하게도 그게 의외로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하도 주위에 수능시험을 본다고 떠들어놔서인지 성적이 어떻게 나왔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제법 계셨습니다. 그냥 숨기려고 하다가 자폭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그 뒤에 이 짤과 함께 저는 조만간 국어 없는 곳으로 이민 가겠다는 실없는 농담도 던졌죠.
사회탐구 선택과목으로 골랐던 동아시아사나 세계사도 아쉽기는 매한가지입니다. 2점짜리 10문제, 3점짜리 10문제로 구성하다 보니 변별력을 위해 난도가 제 상식보다는 훨씬 높았습니다. 만만하게 생각한 대가가 세계사 4등급, 동아시아사 5등급이었죠. 뼈저리게 반성합니다.
한국사 또한 작년 초에 치렀던 한국사능력시험보다도 훨씬 어려웠죠. 그래도 그나마 한국사 2등급이 제 체면을 살려줬네요.
그러면서 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로 들어가서 지난 수능 문제도 모두 다운로드하였습니다. 아이들과 한 번 풀어보려고요. 이렇게 아이들을 수능시험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지에 대해서 알려주고 조금씩 끌어들이는 거죠. ^^
이번 기회에 딱 한 가지 확실하게 깨달은 사실은 이번에 이렇게 시험을 엉망으로 치르고 나니 문득 생각이 들었다는 점입니다. "아, 내년에는 진짜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인제 어떻게 하는지 감을 잡았어"라고 말이죠.
안타까우면서 흥미로운 부분은 이런 말이 많은 학생들이 재수를 선택할 때 주로 하는 말이라는 거죠. 여러모로 많은 가르침을 준 2025학년도 수능시험이었습니다. 기필코 내년에는 더 노력해서 이번에 겪은 수모를 만회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아이들 보기에도 부끄럽고요.
조만간 2025학년도 수능시험 시리즈 마지막 편인 후기로 찾아뵙겠습니다.
한 줄 요약 : 학생들도 마찬가지지만 학부모님들도 수능 만만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직접 경험해 보면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