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교육지원청에서 주관하는 학부모 교육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태블릿 PC 활용 디지털 드로잉>라는 제법 멋져 보이는 이름의 강좌였죠. 이런 교육을 받아두면 저한테도 도움이 될 테고 아이들에게도 알려줄 수 있겠다 싶어서 잽싸게 신청했습니다.
성동광진교육지원청 산하에는140개나 되는 초중고가 있습니다. 그학부모들 중에 단 스무 명만 선정하는 2시간짜리 교육이었습니다. 제법 경쟁률이 높았으리라 생각되는데 운 좋게 신청이 되었습니다. 제가 이런 쪽의 운은 확실히 좋은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평소 e알리미를 잘 챙겨 본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카카오톡 알림은 꺼놓고 살아도 e알리미는 알림은 끄지 않거든요.
그렇게 저는 2호선 뚝섬역 인근에 있는 성수중학교로 가서 학부모 연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발명교육센터가 있다 보니 이런 프로그램도 자주 운영하는 듯해 보였습니다. 도착해 보니 책상마다 각자 사용할 수 있게끔 스마트 패드가 놓여있더군요.
강사님은 제법 먼 곳인 서대문구에서 오신 선생님이셨습니다. 담당 선생님의 인사와 함께 교육은 시작됩니다. 그때부터가 고난의 시작이었죠.
사실 저는 가장 못하는 일 중 하나가 그림입니다. 굳이 순서를 따지자면 수영 다음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신청할 때부터 걱정이 컸지만 그래도 훌륭하신 강사님이실 테니 제 부족한 그림 실력을 보완할 수 있는 기가 막힌 한 수를 준비하셨으리라 믿고 따라가 보기로 합니다.
이 교육은 무료 앱인 스케치북이라는 앱에 대한 기본적인 기능을 습득한 뒤 다양한 디지털 드로잉을 실습해 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사실 처음 써보는 앱이라서 설명을 들으랴, 강의 화면 보랴, 제 스마트 패드를 만지작거리느라정신이 하나도 없더군요. 다른 분들도 허둥지둥하시는 듯해 보였습니다.
어느 정도 설명과 기능습득이 끝난 뒤에 제가 두려워 마지않았던 1차 실습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전에 주어진 바나나우유를 배경으로 해서 레이어(덧씌우기) 기능을 이용해서 그림을 만들어보라고 말이죠. 종이를 덧대서 옮겨 쓰는 방식이라고 생각하시면 조금 더 이해하시기가 좀 나을 겁니다. 잘 그리지 못할지라도 원본을 훼손하지 않을 수 있기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용기를 주셨죠.
10분 정도의 시간 동안 이 그림에 새로운 프레임을 씌워서 저만의 방식으로 그린 작품은 과연 어땠을까요? 시간이 촉박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제 기준에서도 결과물은 그야말로 눈 뜨고 보기 어려운 정도였습니다.
처참, 참담, 비참, 경악, 충격 등과 같은 단어가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힘든 상황이었죠. 물론 처음이고 연습이라고 했지만 다쿠아즈를 만들었던 때와는 비교조차 하기 힘든 수준이었죠.
이미 커다란 내상을 입은 상태여서 이어지는 수업에서는 집중력이 상당히 떨어졌습니다.
"선생님, 저는 틀렸어요. 먼저 집에 가면 안 될까요?"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죠.
곧이어 하게 된 2차 실습에서는 각자가 만든 작품으로 작은 손거울을 만들어보기로 합니다. 직접 만든 DIY 손거울을 가져가는 것이 선생님이 준비하신 오늘 연수의 핵심이었죠.
고민 끝에 제가 베이스로 쓰려고 한 그림은 바로 이러했습니다.
아이들이 평소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 캐릭터들이었는데요. 여기에 저와 둥이들이 평소 좋아하던 캐릭터 하나를 더 그려 넣기로 합니다. 바로 사동이라는 캐릭터인데요. 참 귀엽죠? 원본은 귀엽습니다.
그런데 10분 뒤 이 사동이라는 캐릭터는 저만의 철학을 통해 철저하게 새로운 인물로 재해석됩니다.
저조차도 감당하기 힘든 작품이었지만 그래도 추억으로 남기기 위해 거울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당당하게 놀림받으리라 다짐하면서 말이죠.
담당 선생님께서 신기한 장비를 통해서 출력한 종이를 넣은 뒤에 손거울을 만들어주셨습니다. 뻔뻔했던 저는 쌍둥이니까 혹시 여력이 된다면 손거울을 하나만 더 하면 안 될까요?라는 부탁을 드려서 제 회심의 역작을 하나를 더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서 아이들에게 이 거울을 보여주니 반응은 충격 그 자체입니다. 아빠가 그림을 못 그린다는 사실은 어차피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거죠. 남자아이들이라 손거울을 들고 다닐 일은 거의 없었기에 결국 이 손거울은 아내에게 하나, 장모님께 하나씩 강제로 지급했습니다.
그래도 어찌 되었든 간에 있으면 유용한 세상에 하나뿐인 디자인의 손거울도 두 개나 얻었고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던 경험이었습니다.
1. 나는 그림을 못 그린다.
2. 나는 정말 그림을 못 그린다.
3.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림을 못 그린다.
4. 나는 엄마의 그림실력을 물려받지 못했다.
5. 나는 앞으로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겠다.
한 줄 요약 : 안 되는 일을 억지로 되게 하려고 굳이 애쓰며 살지 말자. 때로는 빠른 포기가 현명할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