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자녀교육에 진심인 쌍둥이아빠 양원주입니다.
처음에는 눈사람을 만드려나 보다 싶었습니다. 지금까지 대부분 그러했으니까요. 저도 오후에 졸다가 반강제로 끌려 나왔던지라 딱히 움직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절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나갔죠.
그런데 아이들이 낑낑대면서 스키 장갑을 낀 손으로 눈을 옮기는 모습을 보니 제 심장이 도저히 참지 못하고 뛰기 시작합니다. 저는 호모 파베르(도구를 쓰는 인간)이기에 당장 관리 사무실 쪽으로 달려가 눈삽을 집어왔습니다.
이때부터 위대한 여정이 시작됩니다. 눈을 야금야금 쌓기는 하는데 당장은 뭘 만들지 계획은 없어 보였습니다. 예전에 보여줬던 만큼의 열정은 없어 보였죠. 1~2년만 해도 눈이 내리기만 하면 눈사람을 만들겠다고 달려 나가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이제 요 녀석들도 많이 컸구나 싶으면서도 흘러간 세월에 대한 아쉬운 마음도 적잖이 들었죠.
아이들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조형물을 만들고 있는 동안 저도 심심했습니다. 너무 심심했던 데다 추웠죠. 엄마는 조금 구경을 하다가 들어가 버리고 그렇다고 너네끼리 놀라고 말하는 건 좀 아빠로서의 책임감을 망각하는 듯해 보여서 저도 과감히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바로 재료 공급책으로 말이죠.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은 저도 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근처에 쌓인 눈을 삽으로 열심히 퍼 나르며 옆에 쌓아나갔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왜 그러냐며 더 안 할 거라며 그만 가져오라고 할 때마다 제게 타박을 줍니다. 합리적인 지적이지만 "아냐, 이렇게만 하면 뭔가 아쉬워"라고 말하면서 계속 격려를 하며 눈을 퍼 왔죠.
처음에는 뭐라고 하더니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작업을 하기 시작합니다. 막상 푸짐하게 쌓여있는 재료들 보니 그냥 두기는 아쉬웠던 모양입니다. 갑자기 열심히 하더군요.
한 녀석은 흰 패딩에 밝은 바지, 한 녀석은 검은 패딩에 검은 바지를 입어서 마지 흑과 백을 연상하게 만듭니다. 흑백조각가라고 해도 되겠다 싶습니다.
저도 흑백조각가들의 작품 시계를 위해 열심히 조력을 합니다. 관리사무소서는 제설장비를 잠시 빌려오고 집에 가서 필요한 도구들을 챙겨서 왔죠. 이 도구들이 있으면 좀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호모 파베르의 센스가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직육면체 모양의 전체적인 틀이 완성되자 흑백조각가들의 섬세한 작업도 이어집니다. 흑색조각가는 뒤쪽 창문을 파기 시작하고 백색조각가는 앞쪽 창문을 조각해 나갑니다. 우리가 이걸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투덜대면서도 세상 진지하게 긁어냅니다. 간단해 보였지만 생각보다 잘 긁어내지지 않아 꽤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좀 더 잘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인지 아이들은 끝을 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제한 시간을 정하고 마무리를 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건강이는 무릎을 꿇어서 옷이 다 젖어가면서 할 정도로 온 열정을 다 쏟아냈더군요. 축축하게 젖은 바지를 보니 평소 무언가를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적당히를 모르고 몰입하는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 듯해 보입니다.
긁어낸 창문 부분이 균일하면 좋았겠지만 가지고 있는 도구가 고작 30cm 자와 케이크 칼 정도였기에 정교함까지 바라기에는 무리기는 했죠. 제가 좀 도와주겠다고 하니 괜찮다고 해서 구경만 열심히 했습니다. 이제는 스스로 하겠다고 말할 때는 믿어주고 기다려줘야 할 시기니까요.
완성된 결과물을 찬찬히 살펴봤습니다.
아쉬워 보이는 느낌이 들었지만 마무리를 하고 먼발치에서 사진을 찍어보니 제법 멋져 보입니다.
예전 이상기후 관련 강의를 갔을 때 설국열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에 설국열차가 뭔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제 작명 아이디어에 아이들도 괜찮다고 동의를 해줬습니다.
물론 실제 영화상에 나오는 기차 비주얼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지만 흑백조각가들은 자신들의 노력이 깃든 작품에 꽤 만족스러워했습니다. 밤에 이 설국열차가 잘 있는지 확인해 보러 나가자고 말하기도 했으니까요.
저녁에 급격하게 피곤하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삼부자가 몸을 써가며 즐겁게 무언가를 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겨울에 눈이 오는 건 싫어하지만 아이들과 보낼 수 있는 이 시간은 결코 싫지가 않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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