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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5형제를 (제발 잔잔하게) 부탁해

by 페르세우스


안녕하세요, 자녀교육에 진심인 쌍둥이아빠 양원주입니다.



요즘 주말 저녁마다 아내가 유난히 챙겨 보려고 하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KBS2에서 방영 중인 주말드라마 〈독수리 오형제를 부탁해〉 입니다. 평소 드라마를 꾸준하게 챙겨보던 사람이 아니었기에 조금 의외였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주위 지인들 사이에서도 이 드라마는 꽤 화제가 되고 있더군요. “요즘엔 이 드라마가 제일 재밌어~”, “잔잔하고 보기 편해서 좋아.” 이런 말들을 들으며, ‘아, 제법 인기가 많은 드라마구나’라며 실감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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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얼마 전, 저녁 식사 후 친가 어르신들께 전화를 드리던 중 아내와 어머니가 이 드라마가 대화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익숙한 등장인물 이름이 오가더니 갑자기 어머니께서 화를 내듯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방송분 보고 너무 화딱질이 나서 혼났어. 그 나쁜 사람은 왜 꼭 그렇게까지 나와야 해? 진짜 스트레스 받아!”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잔잔하게 흘러가던 스토리가 그날따라 악역으로 등장하는 인물과 난데없는 인물 하나가 극의 분위기를 억지스러운 갈등구조로 이끌어나가고 있어서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저도 순간 멈칫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 드라마가 평온하고, 정겨운 가족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힐링 계열’ 드라마라고 알고 있었거든요.


어머니께서도 그런 스토리라서 그동안 즐겨봤는데 갑자기 등장해서 이야기를 휘젓는 그 ‘악역’ 때문에 감정이 요동치고 있다고 하시니 썩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보기 시작한 드라마로 인해 감정이 상하고 있으시다고 하시니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요즘 대중문화 콘텐츠 속에는 악역이 빠지질 않습니다. 드라마는 물론 영화, 심지어 웹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같이 더 세고, 더 비열하며, 더 자극적인 캐릭터들이 끊임없이 등장하죠. 심지어 주인공보다 악역이 더 큰 인기를 얻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넷플릭스 드라마인 <더 글로리>만 해도 그렇고, 최근 인기 영화들을 살펴봐도 결국 기억에 남는 건 ‘주인공의 따뜻함이나 눈물’보다는 ‘악역의 한 방’일 때가 많습니다.


왜일까요?

아마도 자극이 필요한 시대이기 때문일 겁니다. 일상이 무료하고, 현실은 팍팍하니 스크린 속 강렬한 갈등과 대립, 극적인 반전이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죠. 그래서 작가나 연출진도 경쟁적으로 더 ‘자극적인’ 악역을 만들고, 더 ‘흉포한’ 스토리라인을 설정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어쩌면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극적인 콘텐츠는 사람들을 쉽게 몰입하게 만들지만, 쉽게 피로하게도 만듭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이러한 스토리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경우 뇌의 도파민 수용체가 둔감해진다고 말합니다. 처음엔 새로운 악역의 등장에 손에 땀을 쥐지만, 몇 번 반복되면 기존의 자극 정도로는 감흥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시청자는 더 강한 악역, 더 센 설정을 찾게 되고 콘텐츠는 점점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향하죠. 결국은 감정이 피로해지며 보는 사람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드라마 한 편 보고 나서 기분이 상한다면, 그건 드라마가 감정을 건드린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 방식이 너무 강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독수리 오형제를 부탁해〉의 초기 흐름은 굉장히 신선하고 반가운 흐름이었습니다. 복잡하지만 서로 증오하지 않는 인물 관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을 쓰지 않아도 따뜻하고 아름답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드라마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요즘에는 이런 작품을 찾기가 드뭅니다.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가 ‘착하고 따뜻한 이야기’로 마무리되기를 기대했던 이들이 많았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중후반으로 갈수록 갈등을 위한 갈등, 극적 긴장감을 위한 악역 등장으로 흐름이 함께 분노하는 방향으로 바뀌기 시작하니, 많은 분들이 당황하거나 실망하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물론 어떤 이야기가 되었든 갈등은 필수입니다. 발단 - 전개 - 위기 - 절정 - 결말의 구조는 변치 않는 소설의 5형식이니까요. 완벽히 평화로운 이야기만으로는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기 어렵다는 것도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 갈등이 ‘누군가의 고통’이나 ‘억지 설정’으로 만들어진다면, 시청자 입장에서는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에서도 충분히 스트레스 받는데, 굳이 주말 저녁에까지 드라마 보면서 감정 소모를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요. 그에 대한 피로감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연세가 있으신 어머님들이나, 평소 감정에 예민하신 분들일수록 이러한 자극에는 더 크게 반응하시기 마련입니다. 실제로 어머니는 “하도 화가 나서 한동안 안 보려고 했어.”라고 하셨습니다. 저 역시 이런 전개를 보며 “드라마가 인기가 있으면 몇 회차를 더 뽑으려고 하다 보니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라는 생각도 들었죠.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 나니, 드라마는 목적이 단순한 ‘오락’ 뿐만 아니라 ‘쉼’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말 저녁, 가족들과 함께 앉아 따뜻한 이야기로 웃고, 공감하고, 때로는 눈물 흘리는 정도의 자극이면 그 또한 나쁘지 않은 선택이 아닐까요?


그런 드라마들을 찾아보면 간혹 있지만 그 비율이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은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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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다양한 형태로 갈등과 악역을 그리고 있지만, 그 중심엔 늘 사람의 감정이 있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야기의 장치로 등장한 악역이 시청자의 감정까지 해치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될 테니까요.


제가 즐기는 작품은 아니지만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많은 팬들을 위해〈독수리 오형제를 부탁해〉가 후반부로 갈수록 너무 극단적인 자극을 피하고, 처음 가졌던 ‘잔잔함과 따뜻함’의 정서를 잘 지켜가면서 마무리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방식의 드라마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신 작가나 PD님이 있으시니 이번에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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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요약 : 강렬한 악역 없이도 좋은 드라마는 충분히 가능하다. 자극보다 잔잔함이 주는 힘을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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