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자녀교육에 진심인 쌍둥이아빠 양원주입니다.
반말과 존댓말은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리는 우리나라 사회에서 끊임없이 언급되는 화두입니다.
얼마 전 경희대학교 김진해 교수의 '평어 수업'에 대한 소식을 접한 적이 있습니다. 교수와 학생이 서로 이름을 부르며 반말로 대화하는 강의실. 2022년 9월부터 시작된 이 실험은 이제 3년째 계속되고 있고, 다른 대학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기성세대가 느끼기에는 엄청난 소식이었죠.
평어는 '이름 호칭 + 반말'의 형태입니다. "원주야"가 아닌 "원주"라고 부르고, "이게 뭐야?" "나는 이렇게 생각해"처럼 상호 존중하며 반말을 사용하는 방식이죠. 한쪽만 반말을 쓰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평등하게 사용한다는 점에서 '예의 있는 반말'로도 불립니다.
김진해 교수는 이 평어 실험을 위해 수업 방식 자체를 완전히 바꿨다고 합니다. 교수가 일방적으로 강의하는 방식이었다면 그냥 학생들에게 반말하는 수업이 될 뿐이니까요. 대신 매번 주제를 던지고 토론과 놀이를 유도하며,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수업을 만들었습니다.
기사에서 소개된 학생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습니다.
ㅇ 다른 수업은 무조건 교수님 말씀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평어는 의견 교류가 더 쉬운 것 같다
ㅇ 격의 없이 사람 대 사람으로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ㅇ 고학번이어서 같이 말을 놓자고 해도 혼자 말을 놓고 상대방은 존댓말을 쓰는 상황이 불편했는데, 초면에 바로 편하게 지낼 수 있어서 좋다
전반적으로 평가가 좋습니다. 김진해 교수는 평어의 진짜 의미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선생과 학생들끼리 평어를 쓰는 것에 사람들은 주목하는데, 더 중요한 건 학생들끼리 평어로 대화하는 거예요. 한국 사회에서는 나이 말고 다른 어떤 기준으로 친구가 될 수 있는지 고민을 할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요즘 대학생들은 같은 학년, 같은 나이여도 존댓말을 쓰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합니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더욱 두드러진 현상이죠. 존댓말이 진짜 상대를 존중해서라기보다는 상대와 거리를 두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되어버렸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사실 평어 사용에 대한 뉴스를 보면서 장점에 대해서도 공감했지만 사실 저는 아직 솔직히 평어 사용이 불편합니다. 회사 생활을 17년 넘게 해 왔지만, 저는 지금까지 후배에게 단 한 번도 반말을 써본 적이 없습니다. 나이가 열 살 이상 차이 나는 후배에게도 깍듯하게 존댓말을 씁니다. 처음 만난 사람과는 더욱 말할 것도 없죠.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첫째, 제게 그동안 반말은 '편함'이 아니라 '권위'의 언어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예의 있는 반말이라고 해도, 한국어에서 반말은 오랜 시간 서로 간의 위계를 표현하는 언어였습니다. 그 무게감을 쉽게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둘째, 존댓말이 주는 안전한 거리감이 오히려 편하게 느껴져서입니다.
기사에 따르면 김진해 교수는 존댓말을 사용했을 때 하지 못할 말들이 엄청나게 많다고 했지만, 저는 오히려 그 거리감 덕분에 지킬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너무 가까워지면 오히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거나 불편해지는 경우들을 수없이 봐왔으니까요. 직장으로 인해 만들어진 인간관계 비중이 높아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셋째, 평어는 단순한 반말이 아닌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언어입니다.
김진해 교수조차 수업 중에 실수로 존댓말을 쓴 적이 있다고 합니다. 평생 익숙한 언어 습관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노력을 기울일 만큼 절실하게 관계를 바꿀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던 이유도 큽니다.
많은 사람들이 평어를 통해 관계의 벽이 허물어지고, 더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해졌다고 하니 혼란스럽기는 했습니다. 젊은 세대는 존댓말이 만드는 경직된 분위기를 답답해하지만 저는 여전히 존댓말이 편하다고 느끼고 있으니까요. 이는 제가 기존 질서에 안주하며 변화를 두려워하는 구세대여서일까요?
김진해 교수의 표현처럼 "언어의 질서를 벗어나는 경험"이 필요한 지 아니면 각자에게 편한 방식으로 소통하면 되는지 그 답을 내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제법 긴 시간의 고민 끝에 이런 생각에 도달했습니다.
평어도 좋고, 존댓말도 좋은데 결국 중요한 부분은 '진심'이 아닐까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김 교수의 평어 수업이 성공한 이유는 단순히 반말을 써서가 아닙니다. 교수가 학생들을 진심으로 동등한 인간으로 대하고, 그들의 생각을 궁금해하고, 대화를 나누려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수업 방식 자체를 바꾸고,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평어가 큰 역할을 한 셈이죠.
반대로 제가 후배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도 나름의 진심입니다. 상대를 한 명의 독립적인 인격체로 존중하고, 후배라고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는 태도의 표현입니다. 언어는 도구일 뿐입니다. 반말을 써도 무례할 수 있고, 존댓말을 써도 따뜻할 수 있습니다. 김 교수의 실험은 의미 있고 용기 있는 시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다른 방식'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대단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모두가 그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저는 앞으로도 후배에게 존댓말을 사용할 듯합니다. 존중과 배려의 뜻도 있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제가 후배에게 평어를 쓰라고 할 자신이 없어서죠. 대신 그 존댓말 안에 더 많은 진심과 관심을 담으려고 노력할 생각입니다.
"잘했어" 대신 "정말 잘하셨어요"라고 말해도, 그 안에 진심이 담겨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평어를 쓰는 사람도, 존댓말을 고집하는 사람도,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언어의 형태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마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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