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회사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

by 페르세우스


안녕하세요, 자녀교육에 진심인 쌍둥이아빠 양원주입니다.


2월 1일부터 산에서 담배를 피우면 7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개정된 산림재난방지법에 따라 기존 최대 20만 원이던 과태료가 3.5배 늘렸죠. 최근 발생했던 엄청난 규모의 산불 중에서 담뱃불이 원인이 많았기에 내린 조치인 셈입니다.


하지만 과태료만으로 담뱃불 실화를 막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과태료가 아무리 높아도 흡연자들의 습관이 바뀌지 않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아이들과 몇 번 플로깅을 했을 때도 담배꽁초를 수백 개씩 주웠는데 반감이 차곡차곡 쌓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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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와 관련된 제 불쾌한 감정은 최근 전해진 소송 결과로 더 커졌습니다. 1월 15일 서울고등법원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 건보, 공단)이 담배회사 3곳을 상대로 낸 533억 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건보공단은 2014년 30년 이상 흡연한 폐암·후두암 환자 3,465명에 대한 진료비 부담을 이유로 KT&G, 필립모리스, BAT코리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12년째 이어지는 공방에서 두 번째 패소를 기록했습니다.

1심에 이어 2심 재판부도 역학적 상관관계만으로는 개개인의 암 발생과 흡연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공단이 암 환자에게 지급한 진료비는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른 의무 이행이므로, 담배 회사가 공단에 직접 배상해야 할 손해로 보기 어렵다는 논리입니다. 담배의 무해성에 대해 제조사가 증명해야 한다는 '공해 소송 법리'를 적용하기 어렵고, 과거 담배 경고 문구가 미흡했다는 주장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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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기내과 의사 출신인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은 "담배를 피우면 폐암에 걸릴 수 있다는 점은 과학적 진실"이라며 "담배의 유해성에 대해 법원이 유보적인 판단을 하는 점이 비통하다"라며 곧바로 상고의 뜻을 밝혔습니다. 대한간학회, 대한폐암학회 등 의료계는 성명을 통해 흡연이 폐암 발병 원인이라고 주장했고, 질병관리청은 매년 흡연으로 7만 명이 사망한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다릅니다. 1998년 미국 46개 주 정부는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정부가 지출한 흡연 관련 질병 치료비를 보상하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합의를 통해 2,060억 달러(약 280조 원)의 배상금을 받았습니다. 필립모리스, R.J. 레이놀즈 등 담배회사들이 흡연의 중독성과 유해성을 고의로 은폐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결과입니다.


2006년 미 연방법원에서는 담배회사가 흡연의 문제를 내부적으로 인지했으면서도 수십 년간 이를 부인하고 왜곡했다며 담배의 해독에 대한 연구를 억압하고 연구결과를 파괴했으며 니코틴 함량을 조작했다고 판결했습니다. 개인 소송에서도 20년 간의 흡연으로 폐암에 걸린 사람이 담배회사와의 재판에서 승소해 3,700만 달러(약 510억 원)의 배상금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법부의 판단이 국제적 흐름과 동떨어져 있다는 점도 문제지만 개인적으로는 담배 세수라는 달콤함에 취해 백해무익한 담배를 계속 팔면서 국민 건강을 좀먹도록 놔두는 정부가 가장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담배 관련 세수는 약 11~12조 원 규모입니다. 4,500원짜리 담배 한 갑에 세금이 3,300원이 넘으니까요. 정부는 담배를 팔아 세금을 거두면서, 동시에 흡연으로 인한 질병 치료비로 막대한 건강보험 재정을 지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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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 해결책은 담배 판매 자체를 규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개인의 노력으로 담배를 끊는 건 매우 어렵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사무실에도 30~50대 직원 스무 명 중에서 흡연자가 일곱 명이나 됩니다. 담배만큼은 못 끊겠다고 하더군요.


뉴질랜드에서 2022년 통과됐으나 2023년 시행 전 폐기된 '담배 없는 세대' 법안 같은 획기적인 방안이 검토되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2009년 이후 출생자에게는 평생 담배를 팔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었는데 담배를 없애려는 시도 자체가 의미 있었죠. 이렇게 세계 곳곳에서 담배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작은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주 많이 뒤처져 있습니다.


오늘도 길을 걷다 보면 수없이 많은 담배꽁초를 보고 대놓고 담배연기로 피해를 주는 사람은 손쉽게 볼 수 있으니까요. 제가 죽기 전에는 놀랄만큼 변화된 모습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건강보험공단의 대법원 상고가 그 변화의 씨앗이 되어 우리 아이들이 자라날 세상만큼은 담배 연기가 없는 곳이길 바랍니다.


한 줄 요약 : 나는 아마 눈을 감는 그날까지도 담배를 왜 피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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