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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세우스 Apr 29. 2022

장아찌와의 전쟁

멀고도 먼 요리의 길

 

 지난번 자전거 투어를 함께 했던 지인께 두릅 장아찌 한 통을 선물 받았습니다. 워낙 잘 베푸는 성정이신 데다 그날 제가 너무나도 잘 먹어서 나눠주실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장아찌는 정말 맛있었습니다. 한 가지 반전이 있다면 그 장아찌는 설탕을 실수로 많이 넣었다는 사실입니다.

선물 받은 마지막 장아찌


 단짠단짠을 사랑하는 제 입맛에 꼭 맞는 이 두릅 장아찌는 말 그대로 기막힌 우연을 통해 저와 만나게 되었던 것이죠. 하지만 누구에게나 만남이 있다면 이별이 있는 법. 최근 그 누구보다도 제 소중한 친구였던 두릅 장아찌 통은 서서히 홀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소중한 장아찌를 먹어대는 범인을 잡아서 호되게 야단을 치고 싶지만 그걸 때마다 챙겨 먹는 사람은 우리 집에 단 한 명뿐이었기에 그것도 불가능합니다.




 그러다가 참 재미나고 기발한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집 냉장고에도 고향에서 보내주신 두릅이 좀 있다는 것을 기억해낸 것이죠. 맞습니다. 오랜만에 저는 제조상궁이 되기로 했습니다. 마음을 먹었으면 바로 움직이는 것이 바로 저라는 사람입니다.


 며칠 동안 냉장고에 정처 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두릅들은 드디어 차가운 냉장고를 탈출해서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급해진 저는 후딱 물로 대강 녀석들을 목욕시킨 뒤 간장 양념에 두릅을 채워 넣고 뚜껑을 닫아버립니다. 제 입맛에 맞게끔 양념간장과 설탕도 적절히 추가로 투입했죠.

데쳐지지 않은 채 투입된 두릅들, 이래서 사람은 배워야 한다


 소스가 충분할 줄 알았지만 새로운 두릅 친구들이 합류하니 반찬통이 금세 자작해지며 좁아졌습니다. 어찌 되었든 공기보다 반찬의 양이 많아진 반찬통을 보니 괜스레 흐뭇합니다.


기존 소스와 합해서 새로 만든 소스


그런데 그 순간 제 섬세한 작업을 모르고 있던 아내가 지나가다가 툭 하고 한 마디 던집니다.

"혹시 그거 데쳤어?"

쉽게 당황하지 않는 것이 성격의 특징인 저는 세상 쿨하게 대답합니다.

"안 데쳤는데."

실제 내 속마음


 그러고서는 다음 말을 기다리지도 않고 빛의 속도로 소스의 바다에서 목욕재계 중인 두릅 친구들을 밖으로 강제 퇴거시킵니다. 급히 물을 끓인 뒤에 사우나를 시켜주고 나니 두릅들에게서 한결 부드러운 느낌이 납니다.

이정도까지 사진을 찍었으면 글을 쓰기 위해 요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단 한 번의 검색도 없이 마구잡이로 만든 두릅 장아찌는 이렇게 완성되었습니다. 며칠이 지나야 제 입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먹을 수 있게 제대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늘 레시피를 검색하고 요리를 해왔던 입장에서는 나름대로의 장족의 발전입니다.



 불현듯 두릅도 좋았지만 양념이 맛있어서 더 장아찌가 맛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시간이 될 때 제 입맛에 맞는 소스를 개발해봐야겠다는 의욕이 생깁니다. 저는 소스 귀신이니까요.



장아찌의 세계에서 재료는 무한대에 가까우니까 여러 재료로 한 번 시간이 될 때 도전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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