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는 아이들과 함께 정말 큰 마음을 먹고 에버랜드를 갔습니다. 원래 제 의도는 아니었고 친하게 지내는 아이 친구 어머니께서 주도하신 계획에 저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끼게 된 셈이죠. 게다가 저렴하게 입장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해주신 덕에 비용에 대한 부담감도 덜고 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놀이공원을 정말 싫어합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줄 서는 것을 선천적으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래 걷기도 싫어하고 오래 서있기도 싫어합니다.그리고 또 하나의 치명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놀이기구를 못 탑니다.자세한 이유는 뒤에 밝히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이공원을 가기로 결심한 것은 오직 2호 때문이었습니다.(생색 좀 내야죠)
2호의 인생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에버랜드의 명물인 T-EXPRESS를 타는 것입니다. 하지만 2호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은 다양한 이유로 롤러코스터를 탈 수 없는 상황이기에 그동안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죠.
경사 77도의 놀이기구, 내려갈 때 공중에서 추락하는 느낌이 난다고 함
그런데 함께 탈 또래의 동지들이 갑자기 생겼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습니까!! 제 입장에서는 없던 시간이라도 어떻게든 만들어야죠.
에버랜드 프로젝트는그렇게 총 네 집이 참가하게 되었고 어른은 엄마 셋, 아빠 하나, 어린이 고학년 다섯, 저학년 다섯 이렇게 열네 명이었습니다.
오전에 출발해서 부지런히 용인을 향해 갔습니다.
목요일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주차를 마치고 정문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참고로 아시다시피 지난 어린이날의 이곳은 인파의 물결로 뒤덮여있었습니다.
과연 이날 에버랜드 정문 앞의 광경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어린이날이 다시 온 것인지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일단 사람들이 서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날 수 있다는 새로운 의학적인 사실도 하나 몸소 터득했습니다.
눈 뜨고 보면서도 믿기 힘든 광경
"그냥 집으로 갈까?"
"하나도 못 타겠는데?"
"오전 중에 입장은 할 수 있을까?"
"점심 사 먹기도 힘들겠는데?"
저는 그렇게 부정적인 인간이 아님에도 마음의 소리가 아이들 앞에서 말로 새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입장 수속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입장을 한 뒤 저희는 팀을 두 개로 나누기로 했습니다.
1팀 : 페르세우스 + 고학년들 5명
2팀 : 엄마들 + 나머지 중학년, 저학년들
다섯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일단 바이킹부터 갔습니다. 1호와 저는 근처 벤치에서 네 명의 아이들이 끝날 때까지 과자를 먹으며 사람 구경도 하며 하릴없이 기다렸죠.
그다음에는 어린이용 롤러코스터를 여섯 명 모두 타기로 했습니다. 바로 거꾸로 가는 기차, '레이싱 코스터'라는 놀이기구였습니다.
저는 아까 언급한 대로 놀이기구를 못 탑니다. 바로 멀미 때문입니다. 멀미가 심한 관계로 그네조차도 타지 못합니다. VR도 못합니다. 배도 못 탑니다. 제 차를 운전하면서도 멀미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 정도는 탈 수 있다며 강력한 권유로 했고 결국 같이 타게 되었죠.
내게 멀미를 준 악마의 놀이기구, 레이싱코스터
하지만 그것이 화근이었습니다.
30분을 기다려서 50초를 탄 그 놀이기구는 결국 저를 떡실신 상태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눈을 감고 탔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내리자마자 심한 어지럼증은 물론 금방 구토가 나올 것 같은 구역질이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죠.
자세는 완전 똑같다는..
예전의 떡실신 사진
온전히 앉아있기도 힘든 상태였던지라 아이들을 근처에 있는 모래놀이터로 자연스레 유도했습니다. 그곳에 녀석들을 던져놓은 뒤 저는 근처의 조용한 벤치에서 요양을 취했습니다.
에버랜드의 모래놀이터, 참고로 모두 5,6학년
다행히 겨우 회복한 뒤에는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된 이후 팀은 세 개로 나뉘었습니다.
1팀이 쪼개진 것이죠. 1팀은 다시
1팀 : 페르세우스 + 우리 집 1호
3팀 : 고학년 4명(우리 집 2호 포함)으로 나뉘었습니다.
그때부터 3팀의 아이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티익스프레스 같이 강력하고 위험하며 자극적이고 어깨나 목을 결리게 할 것 같은 놀이기구들을 하이네나처럼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달리 저와 1호는 차분하게 동물 구경을 했죠.
판다도 보고 펭귄도 보고 맹금류를 포함한 다양한 새들의 쇼인 '판타스틱 윙스'라는 프로그램도 볼 수 있었습니다.
네 팔자가 최고다
판타스틱 윙스
그러면서 둘이서 사이좋게 동그란 배를 타고 밀림의 물길을 가로지르며 물벼락을 맞는 콘셉트인 '아마존 익스프레스'라는 놀이기구도 겨우 하나 탔습니다.
(물론 그걸 타고도 어지럼증은 느꼈습니다)
아마존 익스프레스(특징 : 배멀미 유발)
그렇게 어찌어찌 그럭저럭 겨우겨우 시간은 지나갔고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습니다. 에버랜드 안은 한결 한산해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버스를 타고 단체로 방문한 중고등학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결과였습니다.
※ 진짜 재밌게 놀기 위해서는 점심 먹고 천천히 오후 3시 이후에 입장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더 이상 할 것도 없고 체력과 의욕마저 떨어진 1호와 저는 결국 어렵게 선제 퇴각을 결정했습니다.
야간반 수업을 소화해낼 만큼의 의지가 없었던 것이죠. 오후 8시에 하는 이벤트도 보겠다는데 그 시간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습니다.
대단한 사람들
하지만 2호를 비롯한 나머지 아이들과 엄마들은 저희가 간 뒤에도 밤 열 시 폐장하는 순간까지 뽕을 뽑고 돌아왔습니다. 그 체력과 의지에 경의를 표합니다.
끝까지 놀다가 마지막에 나가떨어진 아이들
8시에 집에 먼저 돌아온 뒤 씻고 저녁 먹고 쉬니까 제 몰골이 인간의 형태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입니다. 하지만 바로 잘 수는 없었습니다. 2호가 11시 반이 되어서야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명색이 애비인데 자식이 집에 안 왔는데 잘 수는 없죠...
집에 도착한 2호에게 채워두었던 제 워치를 통해 오늘 달성한 걸음수를 확인해보니 놀랄 지경입니다. 아침에 정상적으로 일어난 것이 다행입니다.
20km면 마라톤의 절반인데....
큰 소득이 한 가지 더 있는데 2호가 징글징글할 만큼 충분히 놀았는지 이제 당분간은 놀이공원 안 가도 되겠다고 한 것이네요. 어렵게 결심해서 다녀온 보람이 있습니다.